[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이론

본 [형이상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1년 1학기 서울대학교 ‘형이상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핸드아웃을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다발이론도, 기체이론도 아닌 제3의 이론은 없는가?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중세 스콜라 철학까지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던 이론
;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substance) 이론을 살펴 보자 cf. 기체(substrate)

다발이론과 기체이론을 통합적으로 생각해 보자
; 개체로서의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다발이론과 기체이론은 우리가 일상적 경험을 통해 직접 마주하는 개체는 존재론적으로 더 분석되어야 한다는, 요소들로부터 파생된 구조적 존재자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cf. 단순자
; 다발이론에 따르면 개체는 속성들의 다발, 기체이론에 따르면 개체는 민개별자와 더불어 두터운 개별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이론
; 우리가 일상적 경험에서 마주하는 개체는 다른 근본적인 요소들로부터 구성된 파생적 존재자가 아니며 그 자체로 단일한 존재자, 근본적인 존재자(실체)다

실체이론 vs 다발이론
; ‘소크라테스는 무엇인가(소크라테스의 정체성)’에 관련하여,
; 다발이론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정체성은 소크라테스와 연계된 어떤 속성들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다
; 그 점에서는 실체이론가가 다발이론에 동의한다
; 그러나 다발이론에서는 그것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와 연계된 모든 속성들에 의해 소크라테스의 정체성이 이해된다고 말한다
; 반면 실체이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정체성은 소크라테스와 연계된 모든 속성이 아니라 종 속성에 의해서만 이해된다고 말한다
; 실체이론가는 다발이론이 개체가 속성들을 통해 constitute된다고 생각하는 점, 모든 속성이 개체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에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지적한다
; 소크라테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적합한 답변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종에 속하는가와 관련된 답변이 적절하다(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 ‘대머리다’ 등은 소크라테스가 무엇인지 주어진 후에 소크라테스가 어떠어떠한지에 대한 부차적인 속성들인 것 같다
; 소크라테스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속성은(본질적인 속성) 종 속성이고 나머지 속성들은 우연적인 속성들인 것 같다
; 실체이론의 관점에서 다발이론에 제기된 첫번째 문제 – 일상적으로 우연적인 속성으로 보였던 것들을 모두 본질적인 속성으로 간주하게 된다 – 를 본다면, 그것은 정말로 문제이다
; 실체이론에 따르면 개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이 있고 다른 속성들은 우연적인 속성이다

종 속성은 다른 속성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 종 속성은 개체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 종 속성은 개체화하는 속성, 대상을 개별화하는 속성이다
; 종에 대한 개념이 있어서 그 개념이 적용될 때 개수를 셀 수 있는 것 같다 cf. ‘노란 것’에 대해서는 개수의 기준이 없는 것 같다

종 속성과 다른 속성들 사이에 모종의 연관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 ‘국화임’이라는 종 속성은 다른 속성들과(빨갛거나, 크기가 얼마만하거나, …) 연계되어 있다
; 개체가 다른 속성들을 가지는 것을 통해 ‘국화임’이라는 속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 ‘국화임’이라는 속성을 가지는 것이 선행된다
; 하나의 개체로 국화화된 후에 특정한 모양이나 색 등의 속성을 추가적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cf. 경험론적 전통
; 종 속성 ‘국화임’을 개체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기보다는, 다른 기초적인 경험론적 속성들을 가지고 있을 때에 ‘국화임’이라는 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파생적으로 이해한다
; 반면 실체이론에 따르면 ‘국화임’ 등은 그 자체로 근본적인 속성으로, 이 세계의 실체의 근본적인 양상을 드러내주는 그런 속성이다
; 종은 실체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기본 단위다

실체이론 vs 기체이론
; 기체이론가들은 개체와 연계된 속성은 그 속성과 독립적인 어떤 주체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 그 점에서는 실체이론가가 기체이론에 동의한다
; 기체이론에 따르면 그 속성 아닌 주체가 민개별자이다
; 민개별자는 일상 경험에서 만나는 두터운 개별자와 다르며 실제 주체인 민개별자는 두터운 개별자의 constituent가 된다
; 그 실제 주체는 그것의 정체성을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 실체이론에 따르면 속성과 별도로 이해되는 주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개체와 동일한 것으로, 그것은 바로 종 속성으로 특징지어진 그 어떤 것이다
; 그것의 정체성은 종 속성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 어떠한 종 속성에 의해서도 속하지 않는 그런 개별자는 없다(민개별자는 없다)

‘X is one(1)’에 대해
; 기체이론에서는 X에 민개별자가 들어갔을 때 문장 (1)이 완전한 문장일 수 있다
; 민개별자는 하나의 무엇인지 주어져 있지 않더라도 그냥 하나인 것이기 때문이다
; 반면 실체이론에서는 문장 (1)이 참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참인 것은 그 자체로 참인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장이 참이고 그것의 축약으로 (1)을 이해할 때에만 참일 수 있다
; (1)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문장이다
; 어떤 개체 X에 대해, ‘X is one person’, ‘X is one dog’과 같이 어떤 종 속성에 의해서만 하나의 개체로 이해될 수 있다
; 이러한 문장의 축약일 때만 (1)이 참이 된다
; 종 속성에 의해 개체화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자체로 하나라는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대머리임’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사람임’이라는 종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모두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그 속성들 사이의 관계가 유사하게 이해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 그러나 그 관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논리적 구조가 같지 않다
; 소크라테스가 ‘사람임’이라는 속성을 가진다고 할 때,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대상이라는 것이 그것이 먼저 성립하고 그것에 추가적으로 ‘사람임’이라는 속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 실체이론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하나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반면 소크라테스가 ‘대머리임’이라는 속성을 가진다고 할 때, 소크라테스가 사람이라는 점에서 먼저 하나의 대상이고 그것에 추가적으로 ‘대머리임’이라는 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사람임’이라는 종 속성을 가진다는 것, ‘사람임’의 사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다른 속성들을 통해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 ‘사람임’이라는 종 속성과 결부되어 있는 어떤 특징적인 활동이 있을 것이다
;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 가령 ‘상수리나무임’과 결부되어 있는 어떤 특정적인 활동이 있을 것이다, 개와 결부되어 있는 어떤 특징적인 활동이 있을 것이다, …
; 그런 활동을 하는 것으로서의 한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실체이론에서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실체’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실체’ 개념의 외연은 무엇인가?
;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들과 기본 입자들(물/불/흙/공기 등)이 실체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 반면 인공물들, 자연적 합성물들은 엄밀히 말해서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실체의 단계들/역할들로 생각될 수 있는 것들(목수, 철학자, 애벌레, 청소년 등)도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물리적인 집합체(산, 강, 꽃다발)도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이론가는 꼭 실체의 외연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 인공물 등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할 수 있다


실체이론과 관련된 몇 가지 복잡한 사항들

최하위 종 속성
; 종 속성을 놓고 보면 소크라테스는 사람 종에 속하기도 하면서 동물 종에도 속하고, 유기체 종에도 속한다, 그런 종들의 사례에 해당한다
; ‘사람임’이 소크라테스의 본질적인 속성에 해당했을 때, ‘동물임’과 ‘유기체임’도 본질적인 것인가?
; 소크라테스가 ‘사람임’과 ‘동물임’ 중 어떤 것이 더 근본적인 사실인가?
; 모두 소크라테스에게 필연적인 속성인 것 같은데, ‘사람임’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즉 최하위종에 해당하는 종 속성이 근본적인 사실, 개체의 본질이다
; 이때 단순히 더 많은 제약조건을 만족시킨다는 사실이 근본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할 것 같다(‘철학자임’보다 ‘사람임’이 더 근본적인 속성이다)
;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온전한 개체라고 할 수 있을까?
; 온전한 하나의 개체를 아직 말하고 있지는 않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온전한 개체이다
; 하나의 개체라면 그 개체는 지속 조건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언제 생성되고, 언제 소멸하고, 언제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되는지에 대한 조건)
; 소크라테스가 사람이라고 한다면 소크라테스에 대한 지속 조건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 반면 소크라테스가 동물이라고 한다면 그 자체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지속 조건을 말하기에는 너무 넓은 것 같다
; ‘사람임’이라는 속성은 그것과 결부된 지속조건, 그것을 가지는 개체의 지속조건을 제공해줄 수 있는 온전한 개체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한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온전한 개체이고 동물적인 속성도 가진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임’이라는 속성은 소크라테스의 필연적인 속성이지만 본질적인 속성은 아니다
; 어떤 대상의 필연적인 속성과 본질적인 속성이 구분될 수 있다
; 양상 논리와 의미론을 통한 형이상학적 논의를 중심적으로 다룬 많은 철학자들은 본질적 속성과 필연적 속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 하지만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에서 필연적인 속성과 본질적인 속성은 차이가 있다
; 단집합 {소크라테스}을 생각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이 단집합의 원소이다
; 소크라테스는 필연적으로 이 단집합의 원소이다(소크라테스가 존재하면 이 단집합이 존재하고, 이 단집합이 존재하면 소크라테스도 존재하며, 이 소크라테스가 존재하면 이 단집합이 존재하며 소크라테스가 이 단집합의 원소가 된다)
; 필연적 속성과 본질적 속성이 같다면, 이 단집합의 원소가 된다는 속성은 소크라테스의 본질적 속성이 되어 버린다
; 한편 소크라테스를 원소로 포함하는 것은 이 단집합의 본질적 속성인 것 같다
; 이 단집합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정의된다는 그런 점에서 본질적으로 소크라테스를 원소로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 소크라테스는 이 단집합과 원소관계에 있어 필연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이 단집합을 통해 정의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그 대상의 정체성과는 무관하지만 필연적으로 가지는 속성이 있을 수 있다

실체 아닌 대상은 존재하는가?
; 대상을 실체하는 것과 실체 아닌 대상으로 구별해 보자
; 실체는 분명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 실체 아닌 대상들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닌가?
; 그것의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가?

; 비-실체 대상은 개체인 것처럼 말해질 뿐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실체뿐이다
; ‘여기 책상이 존재한다’는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일상적인 맥락에서는 대략적으로 참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기본입자들이 특정한 책상 기능을 하는 방식으로 이러이러하게 결합되고 있다는 것의 축약으로 이해한다면), 그 문장 자체는 엄밀히 말해 거짓이다

; 실체가 아닌 범주의 존재자, 가령 속성은 존재하는가?
; 실체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속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실체는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고, 실체 아닌 것들은 파생적인 의미에서 존재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being은 여러 방식으로 말해진다’고 말했다
; 서로 다른 동의어 술어들이 있다(ex. 총각 = 결혼하지 않은 남자)
; 한편 같은 단어이지만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동음이의어가 있다(ex. 배)
; 소크라테스가 존재한다고 할 때 ‘존재한다’라는 술어의 의미와, 소크라테스의 속성으로서 철학자임이 존재한다라고 할 때 ‘존재한다’라는 술어의 의미는 완전히 동의어도 완전히 동음이의어도 아니다
;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 무언가 연결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가령 술어 ‘건강하다’는 여러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 (1) 소크라테스는 건강하다, (2) 두부는 건강하다(tofu is healthy), (3) 우리 사이의 관계는 건강하다
; 술어 ‘건강하다’가 정확히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모종의 의미상의 연결이 있는 것 같다
; 실체 소크라테스가 건강하다는 것은 개체로서 소크라테스의 활동 중 어떻게 활동하는 것이 건강한 것인지에 대한 사실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본성을 잘 발휘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 두부가 건강하다(건강에 좋다)는 것은 두부 자체가 그런 활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두부를 먹으면 소크라테스의 본성을 발휘하는 그 활동을 할 수 있다, 즉 소크라테스의 활동이 건강해진다는 점에서 파생적으로 쓰인 것이다
; 우리 관계가 건강하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본성을 잘 발휘하게 해주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 (1)은 실체와 관련된 중심적 의미이고, (2)나 (3)에서의 쓰임은 파생적 쓰임으로서 그 의미는 실체를 중심으로 재해석된 의미이다
; 이러한 술어를 pros hen (in relation to one)이라 한다
; 의미의 중심점, starting point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파생되어 쓰일 수 있다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being(존재함)’의 중심적 의미를 구성한다면,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즉 어떤 속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실체의 성질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 ‘청소년’, ‘올챙이’처럼 실체 아닌 존재자들에 대해서도 파생적으로 존재한다고 참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올챙이’는 ‘개구리로 나아가는 어떤 한 단계에 있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이 입장에 따르면 ‘존재한다’라는 술어가 실체 아닌 존재자들에 적용해서도 말 그대로 참일 수 있다
; 다만 그때 술어의 의미는 실체에 적용되었을 때 그 술어의 의미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 의미를 바탕으로 파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의미를 가진다
; 이때 두 가지 종류의 존재성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체와 물질
; 우리는 사람 종의 한 사례가 된다
; 사람 종의 사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 사람 종에 해당하는 어떤 특징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일 것이다, 가령 생명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윤리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행위하는 것 등 …
; 이러한 인간적인 행위를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을 때 물질을 통하지 않는 행위는 없는 것 같다
; 하나의 사람 종의 사례로 유지된다는 것, 사람의 활동을 한다는 것은 물질 없이는 불가능한 것 같다
; 그러나 한편 사람의 활동은 물질적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그 물질 자체는 아닌 것 같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이 있고 사람의 형상이 물질(질료)에 결합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 책상의 형상이 질료에 입혀지며 하나의 책상이 생성되는 것처럼, 사람도 생성된다
; 그 형상이 계속 유지되는 한에 있어 한 개체는 계속 지속하며 그 형상을 잃게 되면 대상을 이루던 물질기반은 남아있을지라도 그 대상은 소멸하게 된다
; 실체는 질료와 substantial form의 결합체다(질료형상론, hylomorphism, ‘hyle’ matter; ‘morphe’ form)
;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근본적인 존재자이지만, 물질과 완전히 독립적인 하나의 실체로서 근본적인 존재자인 것은 아니다, 물질 기반을 가지고 있다
cf. 데카르트는 물질 실체인 몸과 정신 실체인 영혼을 별개로 보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이론은 보다 자연주의적 면모를 띠고 있다

이런 입장에 야기되는 문제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개체가 실체로서 근본적인 존재자이고, 동시에 개체는 물질을 부분으로 가지고 구성되어 있다
; 두 입장이 양립할 수 있는가? 정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 모래더미를 떠올려 보자
; 모래더미는 근본적인 존재자는 아니다
; 모래 알갱이들을 물리적 부분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더 근본적인 존재자인 모래 알갱이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모여 있을 뿐이다, 집적체일 뿐이다
; 따라서 모래더미는 실체가 아니라 파생적인 존재자인 것 같다
; 모래더미가 가지는 성질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고 부분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 반면 어떤 실체가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는 그것과 달리 무언가 더 응집력과 통합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모래더미는 근본적인 존재자가 아니라고 할 때 모래더미가 가지고 있는 성질은 모래 알갱이들이 집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 근본적인 존재자는 만들어질 때 어떤 통합의 원리가 있는 것 같다
; 모래더미는 각각의 실체들을 부분들을 가진다는 사실에 의해 파생적인 존재가 된다
; 만약 소크라테스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이 각 독립적인 실체들이라면 소크라테스를 근본적인 존재자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정말 소크라테스가 근본적 존재자이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이 실체들이어서는 안 된다
; 소크라테스의 부분들을 점검해 보자
; 소크라테스는 머리, 장기들, 피, .. 를 부분으로 가지고 있다
; 이러한 부분들이 실체들이라고 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이런 실체들의 집적체에 지나지 않게 된다
; 실체보다는 파생적 존재자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해진다
; 눈은 어떤 대상을 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 눈이므로, 소크라테스의 눈만을 골라서 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눈이 아니다
; 소크라테스의 부분들은 독립적인/근본적인 존재자가 될 수는 없다

; 한편 소크라테스의 부분들은 결국 기본 입자들로 구성된 것일 텐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기본 입자들은 실체이다
;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소크라테스는 결국 모래더미와 다르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소크라테스가 근본적 존재자라는 주장과 충돌하지 않겠는가?
; 기본 입자 > 세포 > 장기 > 소크라테스
; 기본 입자는 소크라테스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실체인 기본 입자로 구성된 존재자인가?
; 기본 입자는 그것만의 특징적인 활동이 있는데, 기본 입자들이 만나서 새로운 개체를 형성했을 때 그것들의 특징적인 활동 양상이 사라진다(ex. 양성자+중성자=수소원자)
; 그런 것이 존재론적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기본 입자는 그것이 행사하는 특징적인 인과적 활동이 있고 그것으로 기본 입자를 이해해 보았을 때, 결합했을 때 기본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 양성자와 중성자는 수소원자를 구성하고 있겠지만 무언가 현실적으로 실체의 양상을 띠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 실체이긴 하겠지만 그 자신의 실체성을 현실화하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한편 수소원자가 붕괴되어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뉜다면 기본 입자의 실체성은 다시 현실화되는 것 같다
; 실체를 이와 같이, 그 실체성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 수소원자를 구성하고 있을 때 양성자와 전자는 잠재적으로 실체이고, 붕괴되어 나오면 현실적으로 실체이다
; 기본 입자가 현실적으로 실체화되어 몸 안에 있을 때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부분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그러다 어떤 활동을 통해 조직화된다면 그 기본 입자는 현실화된 실체성을 잃으며 오직 잠재적 실체로서만 소크라테스를 구성하게 된다

모래더미의 경우와 소크라테스의 경우를 구분해 보자
; 모래더미의 경우에는 모래더미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이 잠재적 실체로서가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서 모래더미를 구성한다
; 반면 소크라테스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입자들은 오직 잠재적 실체로서만 소크라테스를 구성하고 있다
;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실체성을 더 잘 드러내 주는 방식인 것 같다
; 현실성과 잠재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한가(과학적 활동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 신비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

인식론적 우려

다발이론의 동기는 개체를 속성들과는 별도의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개체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었다
; 우리는 개체를 지각과 같은 경험을 통해 직접 만나는 것처럼 간주하는데, 우리가 경험을 통해 직접 만나는 것은 개체라기보다는 속성인 것 같다
; 따라서 속성을 통해 환원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개체를 상정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상정하는 것이며, 기껏해야 추론을 통해 개체의 존재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이는 개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괴리가 있는 것 같다
; 개체를 그 속성들의 다발로 이해한다면 개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인식론적 어려움이 없어진다
; 반면 개체를 속성들과는 분리된 별개의 어떤 것으로 본다면 인식론적 어려움이 발생한다
; 이러한 어려움은 기체 이론에 분명한 문제였다
; 실체 이론 내에서도 실체란 우리의 경험에 직접 주어져 있는 그런 속성들과는 별도의 어떤 것인 것 같다
; 그렇다면 경험을 통해 일상적 개체를 만난다는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과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 실체이론에도 다발이론이 기체이론에 제기했던 인식론적 우려가 여전히 제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사실 우리가 실체를 만나는 것은 직접적인 지각을 통한 것이다(우리 지각의 직접적인 대상이 바로 개체이다)’임을 보여주면 만족스러운 대응이 될 것이다
; 다발이론이 문제를 제기할 때 그들은 지각에 대한 모종의 가정을 하고 있다
; 우리의 지각의 직접적인 대상은 sense data이든 impression이든 관념이든 그것이고, 대상은 그것을 표상으로 추론을 통해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 이 전제가 잘못됨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에서부터 대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근본적인 인식론적 고려가 어떤 형이상학적 함축을 가져오는지와 결부되어 있다
(; 구체적인 대응 내용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