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속성 변화에 대한 내속이론적 이해

본 [형이상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1년 1학기 서울대학교 ‘형이상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핸드아웃을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내속이론의 관점에서 속성 변화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 내속이론은 현재론적 내속이론의 관점과 영원론적 내속이론의 관점으로 구별될 수 있다
; 영희가 서 있다가 앉아 있는 사례에 대해 영희는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가 굽은 모양을 하는 것으로 속성의 변화를 겪는다
(1) 영희는 시간 t1에서 t2 동안 지속한다
(2) 시간 t1에 영희는 곧은 모양이다 (영희는 서 있었다)
(3) 시간 t2에 영희는 굽은 모양이다 (영희는 앉아 있다)
; 현재론적 내속이론에서는 이러한 개체의 속성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현재론적 내속이론에서의 이해
(2.1) 영희는 이전 시간에 존재했었고, 현재 존재하는 대상이다
(2.2) 영희는 곧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시제 사실로 표현)
(2.3) 영희는 현재 굽은 모양을 하고 있다
; 현재론적 내속이론의 이러한 설명은 현재론이 참이라는 가정에 입각한다
; (2.3)은 현재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영희는 실제로 굽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2.2)는 과거 사실로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는 영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2.3)에 상응해서는 실재하는 대상, 속성, 그 대상이 속성을 가짐이 있지만 (2.2)에 대해서는 대응하는 바가 없다
; 동일한 하나의 영희가 굽은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 속성 변화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주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론적 내속이론의 설명이 안고 있는 철학적인 문제는 없는가?
; 먼저 현재론이 참임을 가정하고 있고 현재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 이처럼 현재론이 현대 과학과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
; 그 자체로 참인 진술은 없다
; 어떤 진술이 참이라면 그것이 표현하는 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 (2.3)이 참이라면 그것을 참이 되게 만드는 비언어적인 세계의 모습 때문에 참이다
; 현재론적 내속이론가는 (2.3)의 참의 근거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 (2.3)은 영희가 존재하고, 굽은 모양이라는 속성이 존재하고, 영희가 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성립하기 때문에 참이라고 말할 것이다
; 반면 역시 참인 (2.2)에 대해서도 비언어적인 세계의 모습 때문에 (2.2)가 참이어야 한다
; 그런데 (2.3)과 같은 방식으로 참의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 현재론의 관점에서 영희가 존재하고 곧은 모양이라는 속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영희가 곧은 모양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 영희가 가지고 있는 모양은 굽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2.2)의 진술이 참이 되는 근거에 있어 현재론자들은 무엇에 호소할 수 있는가?
; 현재론자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의식을 좀 더 분명하게 해 보자
; (2.2)와 같은 진술의 참의 근거를 물을 때 이 질문이 의도하는 바에 있어 잠재적인 어떤 혼동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
; 영희는 경건하고 독실한 사람이라고 해 보자
; ‘영희는 왜 경건한가?’라는 물음을 생각해 보자
; 이에 대해 누군가 ‘신들이 영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한다고 해 보자(신이 있고 신들이 실제로 영희를 사랑한다고 가정할 때)
; 이 답변은 적절한가?
; 이것이 적절한 답변이 되는 맥락도 있을 텐데, 이는 영희가 경건한 것의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 그 물음을 영희가 경건하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가, 즉 영희가 경건하다는 것을 사실로 간주할 증거, 인식적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 신들이 영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영희가 경건하다는 판단에 대한 인식적 근거가 된다

; 그런데 영희가 경건한 것의 근거는 무엇인가의 물음을 인식적 근거를 묻는 물음으로가 아니라, ‘영희가 경건한 사실은 무엇 때문에 성립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해해보자
; 즉 영희가 경건한 사실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를 묻는 물음으로 이해해 보자
; 이때에는 ‘신들이 영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신들이 영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인식적 근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신들이 영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희가 경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역이 성립한다
; 영희가 경건한 사실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와, 영희가 경건한 사실이 참이라고 판단할 인식적 근거는 구분되어야 한다
; 현재론적 내속이론에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이 (2.2)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묻고 있는 것은 (2.2)가 참이라고 판단할 인식적 근거가 아니라 (2.2)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형이상학적 근거다
cf. (2.2)가 참이라고 판단할 인식적 근거로는 영희가 조금 전에 서 있었다는 기억이나 사진 등이 될 것이다(기억은 현재 있는 것이며 존재하는 것이다)
; (2.2)라는 과거시제 문장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형이상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 우리의 기억은 형이상학적 근거가 될 수 없다
; 우리가 기억을 하든 하지 못하든 과거 사실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우리의 인식적 근거와 별개로 성립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 현재론자는 어떤 방식으로 (2.2)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 truth-maker를 찾을 수 있을까?
; 어떤 진술을 참이게 만들어주는 것으로서의 형이상학적 근거 = truth-maker, 진리 확정자
; 현재론자는 어떤 진리 확장자 때문에 (2.2)가 참이 되는지 대답해야 한다

가능한 대응
; 영희가 ‘t1에 서 있었음’이라는 과거 시제화된 속성을 현재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2.2)가 참이 될 수 있을까?
; 시제적 속성에 호소함으로써 진리 확장자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 영희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도 (2.2)는 참인 것 같지만, 이 대응에 따르면 영희가 시제적 속성을 가짐으로써 (2.2)가 참이라고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다
; 영원론적 관점에서는 현재 존재하지는 않지만 다른 시점에 영희는 존재한다는 손쉬운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 현재론적 관점에서는 개체의 특별한 속성에 호소함으로써 답변을 제공하려는 입장과, 시간을 명제들의 집합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이 있다
; 어쨌든 현재론자들에게는 과거 시제 문장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답변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 한편 (2.2)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영희가 곧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과거 사실이고, 그 과거 사실을 원초적인 것으로, 근본적인 존재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 영희가 굽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현재 사실은 영희의 존재, 속성의 존재, 예화와 같은 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과거 사실은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원론적 내속이론에서는 속성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영원론적 내속이론에서의 이해
(3.1) t1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희와 t2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희는 동일한 대상이다
(3.2) t1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희는 곧은 모양을 가진다(하고 있다)
(3.3) t2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희는 굽은 모양을 가진다(하고 있다)
; 영원론에 따라 t1, t2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존재론적으로 동등하다
; 전속이론에서는 시간 부분을 통해 지속, 모양을 가짐을 설명했다면 내속이론에서는 시간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
; 이는 자연스럽고 문제 없는 설명인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전속이론의 대표적 옹호자인 데이비드 루이스는 이러한 입장을 비판한다
; (3.2), (3.3)이 함께 참일 수 있는가?
; 어떠한 대상도 곧은 모양이면서 굽은 모양일 수는 없다
; (3.2)와 (3.3)은 결국 영희가 곧은 모양이면서 굽은 모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 내속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진술 ‘어떠한 대상도 곧은 모양이면서 굽은 모양일 수 없다’는 더 구체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 이 자체로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 시간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 즉 ‘어떠한 대상도 곧은 모양이면서 ‘동시에’ 굽은 모양일 수 없다’
; 그런데 (3.2)와 (3.3)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영희가 한 시점 t1에서 곧은 모양이고 다른 시점 t2에서 굽은 모양이라는 것이다
; 어떤 한 시점에 동일한 영희가 곧은 모양이면서 굽은 모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t1에서의 영희와 t2에서의 영희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동일한 대상일 때, t1에서 곧은 모양을 t2에서 굽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동일한 하나의 대상이 질적 속성인 모양에 있어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
;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동일한 대상이 어떻게 다른 모양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가?
; (내속이론가는 모양이 개체가 가지고 있는 우연적 속성이어서, t1에서의 영희와 t2에서의 영희가 동일한 하나의 대상이라고 할 때 그들은 t1과 t2에서 본질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고 우연적 속성은 다르게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t1에서 영희가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를 이해해 보자
; 전속이론에서는 ‘t1에 위치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는 시간 부분을 영희는 자신의 시간 부분으로 가진다’고 이해할 것이다
; 이때 t1에 위치한 이 시간 부분은 단적으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
; 시간 부분들의 합인 영희가 t1에 어떤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모양을 하고 있는 시간 부분을 가지는 것을 통해서 (그 관계를 통해서) 이해되는 것이다
; 그런데 시간 부분은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그 모양을 하고 있다
; 즉 시점에 대한 고려 없이도 시간 부분은 단적으로 곧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t2이나 t3가 아니라 t1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 그 시간 부분이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시간에 대한 고려와 독립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 다음 그 시간 부분이 t1에 위치한다는 t1과의 어떤 외재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 전속이론에서는 ‘곧은 모양임’이라는 모양을 단적으로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통해 지속체가 어떤 시점에서 곧은 모양을 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 반면 내속이론의 관점에서 곧은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상이 있는가?
; 영희는 단적으로 곧은 모양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 동일한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영희가 전속이론에서처럼 시간에 대한 고려와 독립적으로 모양을 하고 있는 대상이라면(모양을 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상이라면), 영희가 t1에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단적으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는 대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영희이고 그 영희가 우연히 t1과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그 영희가 또한 단적으로 굽은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t2와 외재적인 관계를 맺고 있게 된다
; 이런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 내속이론 하에서는 영희가 t1에서 곧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영희가 곧은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이해될 수는 없다
; ‘영희가 t1에서 곧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영희 아닌 어떤 대상이 단적으로 곧은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즉 시간에 대한 고려와 독립적으로 직접 그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그 대상과 영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다

; 영희가 아니라면 어떤 대상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모양을 가질 수 있겠는가?
; 내속이론가는 시간 부분을 통해 지속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보통 시간 부분 존재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간 부분에 호소할 수 없다
;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떤 대상이 어떤 모양을 가진다면 그 대상은 그 모양을 단적으로 가진다고 생각한다
; 즉 시간에 대한 고려, 어떤 시점인지에 대한 고려와 독립적으로 그 모양을 하고 있는 대상이 있을 때에만 그 모양을 가지는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내속이론은 그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 내속이론가는 영희가 t1에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영희가 있고 곧은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상이 t1에 위치해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대신, 영희가 있고 ‘t1에서의 곧은 모양임’이라는 time-indexed된 속성을 가진다고 이해하거나, 곧은 모양을 내재적 속성이 아닌 영희와 t1이라는 시점 사이에 성립하는 일종의 관계와 같은 어떤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모양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이해를 바꾸어야 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3.1) t1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희와 t2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희는 동일한 대상이다
(3.2*) 영희는 t1과 곧은-모양임이라는 관계를 가진다
(3.3*) 영희는 t2와 굽은-모양임이라는 관계를 가진다
; ‘t1에 곧은-모양임’이 하나의 속성이고 영희가 그것을 가지며, ‘t2에 굽은-모양임’이라는 time-indexed 속성이 있고 영희가 그것을 가진다
; 혹은 영희는 t1과 곧은-모양임이라는 관계를 가지며 영희는 t2와 굽은-모양임이라는 관계를 가진다

내속이론에 대해 전속이론가가 제기하는 우려는 다음과 같다
; 우리가 모양에 대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 모양이라는 속성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은 그 모양을 시간에 대한 고려 없이 단적으로 가진다 – 은 내속이론에서 유지될 수 없다
; 모양은 본질적으로 시간에 상대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내속이론의 가능한 대응
; 모양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이해는 잘못된 것이다
; 모양은 time-indexed된 것 혹은 시간과 개체 사이의 관계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 상식적 직관에서 벗어나지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 한편 모양에 대한 상식적 이해를 거부하지 않고서 대응할 수 있다
; 현재론적 내속이론에서는 시간 부분은 과거 대상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영원론적 내속이론에서는 그 이유로 시간 부분 존재론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 물론 내속이론에서 개체의 지속은 시간 부분을 가짐으로써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 즉 개체의 지속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시간 부분에 호소할 필요는 없지만, 시간 부분을 통해 개체의 속성 변화 등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 (시간 부분이라는 용어가 전속이론과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면 시간 부분 대신 시간 단계와 같은 다른 용어를 도입할 수도 있다)
; 영원론적 내속이론가도 대상과 연계되어 있는 어떤 시간 단계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 시간에 따라 시간 단계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의 합도 존재할 것이다, 물론 내속이론에서 그 합이 영희는 아니다
; 그 자체로 여러 시점에 존재하는 영희라는 지속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연계해서 여러 시점에 시간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시간 단계들이 있다는 것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 시간 단계와 같은 것들이 그 자체로 단적으로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영희가 t1에 곧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어떤 시간 단계가 시간에 대한 고려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곧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고 t1에 위치해 있으며, 영희가 그 시간 단계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 그때 영희가 그 시간 단계를 부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그렇다면 (3.2)와 (3.3)이 전속이론이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분석되지만, (3.1)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이처럼 영원론적 내속이론가는 전속이론가가 설명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속성 변화를 설명하면서도, 지속에 대한 설명에서는 내속이론을 고수할 수 있다

정리
; t1에서 영희의 시간 단계는 영희 자체가 아니다, t1에서 영희는 시간 단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 영희는 t1에 곧은 모양을 가지는 시간 단계와 연계되어 있고, t2에 굽은 모양을 가지는 시간 단계와 연계되어 있다
; 전속이론의 관점에서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는 대상 = 시간 부분
; 내속이론의 관점에서는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는 대상이 없다
; 영희는 지속체로서 단적으로 곧은 모양을 가지면서 그것과 함께 단적으로 굽은 모양을 가질 수는 없다
; 시간에 대한 고려와 독립적으로, 단적으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대상의 존재를 인정할 수가 없게 된다
; ‘곧은 모양임’에 있어 ‘t1에 곧은 모양임’이라는 time-indexed 속성을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시간과의 관계로 모양을 이해한다(모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자)
; 속성 변화 현상에 있어,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는 대상이 있는가에 대해 내속이론가도 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 시간 단계처럼 모양을 단적으로 가지는 대상이 있다
; 다만 영희라는 지속체는 그런 대상들의 부분 전체론적 합이 아니고 여러 시점에 그 자체로 존재함으로써 지속한다
; 그런데 이때 영희는 물질 기반으로서 그러한 시간 단계를 가진다

그런데 만약 영원론적 내속이론이 시간 단계와 같은 존재자를 상정하고 그것을 통해 속성 변화를 설명한다 하면,
; 전속이론에서는 시간 단계들이 있고 지속체는 이 시간 단계들의 부분전체론적 합이다
; 이때 어떤 대상들이 있을 때 그 대상들의 합이 있다는 생각은 문제적이지 않은 것 같다
; 내속이론에서는 시간 단계들을 받아들인다면 시간 단계들이 있고 그것들의 합이 있겠지만, 그것들의 합이 영희는 아니다
; 그것들과 구별되는 통시간적 동일성을 가지는 것으로서의 영희가 있다
; 이렇듯 이 견해는 존재론적으로 많은 존재자들을 상정한다
; 시간 단계들뿐 아니라 지속체가 추가적으로 상정된다
; 물론 많은 존재자들을 상정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영원론적 내속이론을 거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전속이론에서는 시간 한정적인 물질들이 있으면 그 물리적 대상들의 합이 지속체인 데 반해, 내속이론에서는 시간 단계들과도 그것들의 합과도 동일하지 않은 지속체가 있다는 것이 물리주의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 꼭 그런 것은 아니다
; 영희가 시간 한정적인 시간 단계들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것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존재자는 아니다
; 영희는 항상 본질적으로 물리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 본질적으로 물리적 기반을 가지는 점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꼭 물리주의적 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영희는 t1에서의 시간 단계와 t2에서의 시간 단계를 자신의 물리적 기반으로 가지고 있다
; 그러나 영희는 특정한 시간 단계, 특정한 물리적 대상을 본질적으로 물리적 기반으로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단계를 꼭 가져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 어떠한 물리적 기반이든간에 어떤 물질을 물리적 기반으로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영원론적 내속이론이 물리주의적 틀을 벗어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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