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보편자 실재론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

본 [형이상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1년 1학기 서울대학교 ‘형이상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핸드아웃을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보편자의 실재를 옹호할 수 있는 다른 근거가 있겠는가? – 형이상학적 근거
; 플라톤이 보편자 실재론을 옹호할 때 우리의 일상 언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보편자론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 보다 일반적인, 비언어적인 현상에 입각하여 보편자가 존재함을 옹호하려 했다(실제에 대한 우리의 직관)

우리가 일상적 대상들을 분류할 때, 분류의 방식은 다양하다
;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분류는 분류자의 주관적인 요소에 따라 이루어지는 분류라면, 빨간 것들의 분류, 책상들의 분류, 인간들의 분류는 분류 대상 자체의 성질에 따라 분류된 객관적 분류로 보인다
; 빨간 것들이 유사한 것, 책상들이 유사한 것, 인간들이 유사한 것은 객관적인 의미에서 유사한 것 같다(객관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분류)

이러한 객관적 유사성에 주목해 보자
; 빨간 것들간의 유사성은 무엇으로 인해 성립하는가?
; 뻘간 것들은 빨갛지 않은 것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어떤 것)
; 이렇게 각 대상들이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복적인 것은, 보편자일 것이다

유사성으로부터의 논증

  1. 개체들간의 유사성이 성립한다: a, b, … n은 F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2. a, b, … n은 F라는 점에서 유사한 것은 a, b, … n이 보편자 F-임을 예화하기 때문이다
  3. 따라서 보편자 F-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논증을 펼치는 보편자 실재론자는 유사성에 대한 모종의 설명모형을 가지고 있다
: 개체의 유사성 사실은 보편자 공통 예화 때문에 성립한다
: 임의의 존재자 a, b, … , n에 대해 a, b, … , n이 F라는 점에서 유사함은 a, b, … , n이 공통적으로 보편자 F-임을 예화함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사성 설명모형은 일종의 무한퇴행을 촉발시키는 것 같다
(1′) 유사성 현상: a, b, … n은 F라는 점에서 유사
(2′) 유사성 설명모형에 의하면 a, b, … n은 각각 F-임을 예화한다
(3′) 따라서 a, b, … n은 F-임을 예화한다는 점에서 유사
(4′) 유사성 설명모형에 의하면 a, b, … n은 각각 F-임을 예화함을 예화한다
(5′) 따라서 a, b, … n은 F-임을 예화함을 예화한다는 점에서 유사
(6′) 이는 무한히 반복
; a, b, … n은 F-임을 예화할 뿐 아니라, F-임을 예화함을 예화하고, F-임을 예화함을 예화함을 예화하고, … 무한히 많은 보편자를 예화하게 된다

실재론자들의 가능한 대응
; 무한퇴행이 차단된다
; 무한퇴행이 발생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한퇴행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
; a와 b가 F임을 예화한다 = a와 b가 F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 두 사실을 동일한 사실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 유사성 설명모형은 유사성 사실을 예화 사실로 설명하고자 한 것인데, 설명하는 사실과 설명되는 사실은 동일한 사실이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예화 사실이라는 더 근본적인 사실을 통해 설명하려 한 것 아닐까?

; 예화함과 관련한 유사성 사실에 대해서는 유사성 설명모형을 적용시키지 말자
; 예화함에 있어 유사하다는 것 이외에 일상적인 현상적 사실에서의 유사성만을 보편자 예화를 통해 설명하자
; 예화함도 역시 유사성이라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예화함과 관련한 유사성 사실에는 설명모형을 적용하지 않아야 하는지 정당화할 필요는 있다

무한퇴행이 발생하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우리가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설명 체계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고, 그 설명체계를 통해 현상이 설명되고 나면, 다시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 P가 참이면 It is true that P가 따라나오고, 이는 참이다, 그럼 It is true that it is true that P가 따라나오고, 이는 참이다, …
; 이것이 참에 대한 이론의 문제를 드러내는가?

궁극적으로 (3′), (5′) … 은 모두 참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들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사실은(형이상학적 근거는) (3′)에 지나지 않는다
; (1′)과 (3′)은 동치가 아니지만, (3′), (5′), ..은 다른 명제임에도 같은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 (3′), (5′), (7′), .. 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사실은 결국 (2′)이다
cf. 어떤 대상이 a를 가진다 > 어떤 대상이 a 또는 b를 가진다 > …
; 이 모든 것들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사실은 그 대상이 a를 가진다는 사실 하나이다

실재론에 대한 또다른 반대: 브래들리의 무한퇴행
; 개별자 a가 보편자 F임을 예화한다는 사실은 유사성 사실을 설명해주는 근본적인 사실이자 실재론의 기본적인 주장이다
; ‘개별자 a가 보편자 F임을 예화한다’는 무엇으로 성립하는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개별자 a가 존재하고, 보편자 F가 존재하고, a와 F를 연결해주는 예화 관계를 포착해야 한다
; a와 F의 존재만으로는 a의 F 예화 사실이 성립하지 않는다, a와 F의 연결이 필요하다
; a와 F를 연결하는 관계 R이 있어서 그 관계 덕분에 a가 F임을 예화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 이때 관계 R은 개별자가 아닌 보편자다
; 보편자 R로 인한 a와 F의 연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직 설명되지 않는다(R이 ‘예화함’이라는 관계라 하더라도 a와 F 사이의 예화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해야 한다)
; R은 어떻게 a와 F를 연결시켜주는가? R이 a와 연결되고 R이 F와 연결됨으로써, R이 a와 F를 연결시킬 수 있다
; 그런데 보편자 R과 a 사이의 연결은 근본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a와 F 사이에서 연결관계가 그 자체로 설명되지 않은 것처럼)
; R과 a를 연결해주는 관계 R’을 도입해야 한다
; R’은 R’과 a가 연결됨으로써 R’과 R이 연결됨으로써, a와 R을 연결시킬 수 있다
; 다시 R’과 a를 연결해 주는 관계 R”을 도입해야 한다
; 무한퇴행 발생
; 이는 보편자 실재론에 유해한 무한연쇄인 것 같다
; 개별자가 보편자를 예화한다는 보편자 실재론의 핵심적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이해하는 데에 모종의 문제가 발생한다)

브래들리의 무한연쇄 모형

첫 번째 종류의 무한연쇄는 허용하더라도 실재론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과 달리, 브래들리의 무한연쇄는 보편자 실재론에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차이에서 발생할까?

첫 번째 무한연쇄의 발생은 실재론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
; 유사성 사실의 성립은 유사성 설명모형에 따라 보편자의 공동 예화를 통해 설명된다
; 반대 논증의 제기자는 실재론의 설명틀을 통해 설명하고 나면 또 다른 종류의 유사성 사실이 성립한다고, 즉 다시 설명해야 할 유사성 사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 실재론자들은 다시 같은 설명틀을 적용하여 공동예화를 통해 유사성 사실을 설명한다, 설명 후에 또 다시 설명할 유사성 사실이 발생한다, .. 이 과정이 무한히 진행된다
; 실재론자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유사성 사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
; 실재론자가 주어진 유사성 사실에 대해 유사성 설명모형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때, 계속해서 새로운 유사성 사실이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각 단계마다 계속해서 실재론의 설명의 틀을 적용하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브래들리의 무한연쇄는 실재론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
; 브래들리의 무한연쇄는 a와 F만으로는 ‘a가 F를 예화한다’라고 할 때의 a와 F의 연결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알 수 없음을 지적한다
; a와 F의 연결에 대해 실재론자들은 R이라는 다른 보편자에 호소한다
; 그러나 이 경우 보편자 R이 어떻게 a와 F를 연결하는지 알 수 없다
; 실재론자들은 다시 한번 R’에 호소하지만, 여전히 R’을 통해 a와 F의 연결이 설명되지 않는다
; 가장 처음 설명되어야 했던 예화사실은 R에 호소하여 설명되지 않고, 또다시 R’에 호소해도 설명되지 않고, … 계속해서 새로운 보편자에 호소하더라도 설명하려 했던 사실 ‘a가 F임을 예화한다’가 설명되지 않는다
; 처음 설명하려 한 예화사실은 단 한번도 설명되지 않았다

전자는 각 단계에서 설명은 이루어졌지만 다시 새롭게 설명해야 할 새로운 사실이 발생하는 것이고, 후자는 처음 사실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실재론자들의 대응

스트론슨의 제안 (ㄷ,ㄹ 비판)
; 관계 R은 보편자가 아니다, 관계 R은 a와 F에 각각 연결됨으로써 a와 F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 R이 a와 F를 연결하려면 R이 a와 F 각각에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 R은 그 자신은 a와 F와 연결되지 않으면서 a와 F를 연결해주는 무엇, 비관계적 연결자이다 > a와 F의 연결은 어떤 ‘관계’ R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 개별자도, 보편자도 아닌, 이런 이론적 역할을 수행하는 비관계적 연결자라는 것이 있다
; 이러한 대응에 따르면 본래의 보편자 실재론자들의 틀은 조금 틀어질 것이다(개별자 – 보편자의 두 범주에서 새로운 범주 도입)

처음에 관계 R을 가정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 관계 R을 가정함에 있어 a가 F임을 예화한다는 예화 사실 혹은 a와 F가 예화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다른 것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정되어 있다
; 브래들리는 예화 사실이 설명되어야 한다면 어떤 관계 R에 의해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고 한 것이다
; a와 F의 연결이 a와 F만으로 설명되진 않는 것은 맞으나, a가 F임을 예화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는 근본적인 사실이다
; 실재론의 이론적 장점 중 하나는 실재론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던 유사성 사실과 같은 것들을 설명해주는 것인데, 예화 사실을 근본적인 것으로 놓고 그것을 통해 유사성 사실을 설명한다면 예화 사실 대신에 유사성 사실을 근본적인 것으로 놓으면 안 되는 것인가?
; 예화사실에서부터 근본적인 사실로 볼 만한 이유가 있는가? 굳이 보편자에 호소함으로써 예화 사실을 말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