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형이상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1년 1학기 서울대학교 ‘형이상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핸드아웃을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보편자 반실재론(유명론)
보편자를 거부할 만한 이론적 동기가 있을까?
인식론적 어려움
(1) 우리는 보편자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보편자를 알 수가 없다
(2) 따라서 우리는 보편자가 실재한다고 믿을 인식적 근거가 없다
; (1)이 맞다면 (2)도 따라나올 것이기에 논증의 핵심은 (1)에 있다
; 인식과 관련되어, 영국 경험론자들과 같이 우리가 우리가 무엇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우리 지식의 궁극적 원천은 지각과 기억, 추론 등에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1)을 주장하며 보편자를 거부할 것이다
; 보편자는 지각의 대상이 아니다, 보편자가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보편자에 대한 어떠한 인식적 근거도 가지지 못한다
정말 보편자는 지각의 대상이 아닌가?
; 보편자를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이해한다면 ‘빨강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 우리는 빨강이 컵에 예화되고 있는 것을 지각한다
; 지각은 결국 국지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보편자는 전체적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 따라서 ‘빨강임’을 비롯한 보편자는 지각의 대상이 된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 우리가 빨간 컵을 지각할 때 지각의 직접적인 경험 대상이 되는 것은 빨강이라는 관념이다(경험론)
; 보편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빨강이라는 관념 혹은 감각자료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빨강이라는 관념 혹은 감각자료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추상 혹은 개념화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실재론자가 인식론적 어려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것
; 보편자에 대한 앎은 지각을 통한 앎이 아니다
; 지각을 원천으로 가지지 않으면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 수(우리는 숫자는 볼 수 있지만 수는 볼 수 없다), 집합
콰인은 대표적인 유명론자이지만 수나 집합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 콰인이 보편자를 거부하는 근거는 그것이 추상적 대상이나 감각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종류의 대상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 콰인은 우리가 이론적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수나 집합에 대한 존재양화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중력상수에 대한 존재양화 > 존재한다)
; 최선의 이론에서 그것에 대한 존재양화를 한다면, 이론적 덕목의 고려를 통해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콰인의 견해를 활용하여 실재론자들은 보편자가 지각의 대상이 아님에도 보편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의 기준을 따랐을 때, 보편자가 지각의 대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우리의 최선의 이론은 보편자 실재론을 받아들이는 이론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유명론자들도 그와 유사한 지반 위에서 보편자 실재론을 거부할 수 있다(방법론적 동기)
; 콰인은 자신의 방법론에 입각하여 보편자를 거부했다
; 유명론자들의 동기는 우리가 경험하고 지각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자인 개별자는 수용할 수 있지만, 그에 더해 보편자라는 범주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보편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실재론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현상들은 적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보편자와 같은 문제적인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도 최선의 이론을 가질 수 있다
; 유명론자들은 보편자 실재론자들이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으면 설명될 수 없다는 현상들에 대해, 보편자를 설명하지 않고서도 그러한 현상들을 설명해낼 수 있음을 주장한다
; 개별자만으로 실재론자들이 설명하고자 한 현상을 설명된다면 존재론적 단순성(오컴의 면도날)에 따라 유명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세 가지 형태의 유명론
; 보편자 실재론이 설명하고자 한 현상을 보편자에 의존하지 않고 유명론적 틀에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이려 한다
보편자 실재론자들이 보편자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두 현상
; 주술문장 ‘a는 F이다’가 참이면 이는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고, F-임은 보편자다’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주술문장이 참임을 만들어주는 비언어적인 것)
; 객관적 유사성 ‘a와 b는 F인 점에서 유사하다’가 성립하면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a와 b는 F-임을 공동예화한다’는 사실이다(유사성을 만들어주는 근본적인 사실)
보편자 실재론자들은 주술문장 ‘a는 F이다’가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고, F-임은 보편자이다’를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다시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고, F-임은 보편자이다’는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다’와 ‘F-임은 보편자이다’라는 두 주장으로 구분된다
; 유명론자들은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다’ 또는 ‘F-임은 보편자이다’를 거부함으로써 보편자 실재론을 비판할 수 있다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다’를 거부
; 주술문장이 참이기 위해 요구되는 전부는 주어에 상응하는 개별자의 존재뿐이다, 술어에 상응하는 존재자는 상정할 필요가 없다
; a에 상응하는 개별자는 있지만, F-임이라는 술어에 상응하는 속성이란 없다(단출한 개별자만을 상정)
; 따라서 보편자란 없다
; 단출한 유명론/극단적 유명론, 콰인
; 보편자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속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a는 F-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수용하고 ‘F-임은 보편자이다’를 거부
; F-임이라는 속성은 있지만 그 속성이 보편자인 것은 아니다
; 속성은 모종의 개별자이다,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고 개별자를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 현상의 설명을 위해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속성의 본성이 보편자임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이때 속성의 본성에 대한 입장에 따라,
; 속성은 개별자들의 집합으로 이해될 수 있다(집합 유명론)
; 속성은 일상적인, 구체적인 개별자와 구별되는 추상적 개별자이다(abstract particular, 추상적인 것이라 하여 보편자일 필요는 없다)
; 어떤 의미에서 추상적이지만 여전히 개별자라 할 수 있는 것, 트롭
; 속성은 일종의 트롭이다(트롭 유명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