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 기능주의: 역할 기능주의에 대한 김재권의 비판

본 [심리철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0년 2학기 서울대학교 ‘심리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수업 자료를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꿈의 이론”으로 불리는 기능주의
; 마음에 관한 실제론적 견해, 내적 상태 인정 (행동주의와 대비)
; 물리주의에 친화적 (다수실현가능성 포용)
; 마음의 인과력 인정 (부수현상론과 대비)
;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자율성, 특히 뇌과학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비환원주의)
=> 매력적인 입장인 기능주의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특징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기능주의자들의 입장 = 역할 기능주의
; 심적 상태의 복수실현가능성에 주목
; 기능주의가 속성이원론 또는 비환원적 물리주의를 함축하는 것으로 여김
; 심리학이 뇌과학에 의존적이지 않고 자율적인 과학이라 주장
; 심적 상태를 실현자가 아니라 공통된 역할/기능으로 보기 때문
cf. 실현자 기능주의(암스트롱) = 동일론, 심적 개념을 기능주의적으로 해석, 그로부터 동일론 이끌어냄

그런데 이러한 역할 기능주의가 과연 정말 가능한 것인가?
(a) 심적 속성은 다양한 서로 다른 물리적 속성에 의해 실현되지만, 그 실현자가 아니라 기능적 역할에 의해 정의된다(이차 속성)
(b) 이러한 심적 속성은 과학적으로 적합하여, 심리학 및 인지과학에서 연구된다. 이때 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으므로 심리학은 환원되지 않는 독립적인 학문이다
; 김재권은 다음 두 논제 간에 모종의 긴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김재권의 논증 (1)
; 기능주의의 두 전제에서 시작
(1) 어떤 특정한 기능, 인과적 역할 H를 수행하는 속성이 존재하고, 그것을 가지는 속성이 심적 속성이다(심적 속성은 이차 속성, 기능적 속성)
(2) 역할 H를 수행하는 일차 속성은 다양하다, Q1, Q2, Q3처럼 다양하게 실현된다(다수실현), 이때 Q1, Q2, Q3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이질적인 본성을 가진다 ex. 사람의 경우에는 Q1, 오징어의 경우에는 Q2, 화성인의 경우에는 Q3가 역할 H를 수행하며 심적 속성 M을 실현한다
(3) M = Q1 V Q2 V Q3 , from (1), (2), 이때 심적 속성 M은 이질적인 선언적 속성이다
(4) 이질적인 것들이 선언으로 묶인 속성 M이 과학에서 다루는 속성으로 적합한가? 법칙 안에 들어오는 속성으로 적합한가? 하나의 과학적 ‘종(kind)’으로서 적합한가? 이질적인 선언적 속성은 과학적 일반화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과학적 속성으로 적합하지 않다
ex. 서로 다른 화학적 구조를 가지는 다양한 항생제들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이것들 사이의 생화학적 일반 법칙을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따라서 M은 과학적 속성으로 적합하지 않다
∴ 기능주의자들은 M만을 따로 연구하는 심리학이 자율적인 것으로 과학과 같은 위상을 가진다고 주장했지만, M을 다루는 과학이란 있을 수 없다

기능주의자들의 반박
; (3)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M은 단순히 선언적 속성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상위 차원의 속성이다
; M이 다양한 물리적인 것들에 의해 실현되기는 하지만, M 자체는 그것들을 넘어서는 기능으로서의 속성이다

김재권은 그런 반박이 있다면, M이 과학적 속성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을 보이는 또 다른 논증이 가능하다며 두 번째 논증을 제시한다
김재권의 논증 (2)
(1) 어떤 심적 상태 M의 특정 사례가 가지는 인과력은 그것을 실현하는 물리적 실현자가 가진 인과력에서 나온다
(2) 물리적 실현을 담당하는 속성 Q1, Q2, Q3는 이질적 속성들이므로, 각 심적 상태 사례의 인과력은 이질적이다
(3)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과학적 속성들이 개별화되는 기준은 인과력이다. 즉 인과력이 같을 때 같은 속성으로 분류된다
(4) 각 심적 상태 사례는 인과력을 가지지만, 이질적 일차 속성들에 의해 다수실현되는 이차 속성으로서의 M은 과학적 속성이 아니다(단일한 인과력을 가지지 않는다)

김재권의 결론
; 심적 상태에 대한 복수실현가능성과 기능주의가 결합되면, 역할 기능주의는 심리학의 비환원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 즉, 심적 상태를 다루는 심리학은 과학으로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한다. 심적 속성은 그것의 물리적 실현자들로 산산히 부서지고, 과학적 속성에 요구되는 인과적/법칙적 통일성을 잃은 채로 끝날 위험에 처한다

; 기능주의자들은 이미 기능적인 심적 속성이 과학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므로 심적 속성이 과학적으로 적합한 속성이라는 것이 과학에 의해 밝혀졌다고 주장하며 김재권의 결론을 반박하려 한다
; 김재권의 논증은 아래 차원에서부터 봤기 때문에 이질적 속성에 집중하고 파괴적인 결론을 내어놓은 것이며, 상위 차원에서 심적 속성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기능적 차원, 역할 차원에서 일반화되는 법칙들이 이미 있고 그것들이 연구되고 있으므로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top-down 방식을 주장)

김재권의 논증이 옳다면,
; 심리학이나 인지과학은 더 이상 그 하위 차원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
; 그러나 심리학이 완전히 불가능한가? 심리학은 어떤 차원에 있어야 하는가?
; 종제한적인 차원에서, 다수실현되는 물리적 속성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존재 가능하다 ex. 인간 심리학, 문어 심리학
; 각 종의 심적 상태가 기능적 차원에서 유사하더라도 교차 적용은 위험하다(외견상의 일반성일 뿐, 진짜 과학적 법칙은 아니다)
; 결국 가능한 것은 환원되는 것으로서의, 신경생리학으로서의, 국지적인 심리학들뿐이다
; 이때 종제한적인 심리학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가능한 속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뇌과학에 자율적이지 않다

여전히 모든 고통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답해야 하지 않을까?
; 국지적인 고통은 있지만, 일반 속성으로서의 고통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없다
; 개념적 차원에서나 다룰 수 있을 것(개념과 속성의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