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시간과 관련된 철학적 견해들

본 [형이상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1년 1학기 서울대학교 ‘형이상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핸드아웃을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개체의 본성을 탐구하는 데 있어 개체와 결부하여 중요한 한 가지 차원이 있다
; 한 개체가 한 시점에 가지고 있는 속성들이 있다고 할 때 그 속성과 개체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집중해서 개체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 그런데 개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한다는 것이다, 즉 한 개체는 여러 시점에 존재한다
; 뿐만 아니라 개체는 속성에 있어 변화를 겪으며 지속한다
; 그때의 변화는 속성에서의 변화일 수도, 물리적 부분에서의 변화일 수도 있다
; 개체의 본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어가며 지속한다’는 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 앞으로는 개체의 지속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해 보자

개체의 지속과 관련된 논의를 하기 이전에 먼저 간단히 다뤄야 할 것은 시간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이다
; 시간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우리 목적에서 필요한 만큼 살펴보도록 하자


시간과 관련해서 한 가지 현상을 생각해 보자
; 일상적으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 ‘시간이 흐른다’는 그 자체로 분명한 말이 아니라 무언가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 우리는 어떤 현상을 두고 시간이 흐른다는 말을 하는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가? 그 말이 표상하는 바는 무엇인가?
; 가령 ‘봄이 코너에 와 있다’라고 말할 때 비유적인 표현이 표상하고 있는 내용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는 것이다

;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 발생하며 현재의 사건이 되고, 즉 현실화되고 또 곧 과거의 사건이 된다
; 이처럼 시간의 흐름을 유비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 다른 한편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완전히 사적인 것은 아닐지 모른다, 세계의 객관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 시간의 흐름은 세계의 객관적인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순전히 주관적인 투영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언어 사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시간의 흐름의 객관성과 주관성 논의를 진행해 보자
; 우리 언어에는 시제적 표현과 무시제적 표현이 있다
; ‘재작년’, ‘과거’, ‘~었~’ 등은 표현 그 자체로 시제적인 사실, 즉 어떤 시점에 대한 사실을 본질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이처럼 ‘지금’, ‘현재’, ‘미래’, ‘과거’, ‘~일 것이다’, ‘였다’, ‘하고 있다’와 같은 표현들을 ‘시제적 표현’이라고 한다
; 문장에는 시제 표현을 담고 있는 시제 문장과, 시제 표현을 담고 있지 않은 무시제 문장이 있다
; 시제적 서술 문장이 표현하는 사실이 있다면 그러한 종류의 사실을 A 사실이라 해 보자
; 무시제적 서술 문장이 표현하는 사실이 있다면 그러한 종류의 사실을 B 사실이라 해 보자

이 세계에 성립하는 궁극적인 사실들은 시제적인 문장을 통해 표현되는 사실들을(A 사실들) 포함하는 것인지, 혹은 모두 궁극적인 차원에서 무시제적인 문장을 통해 표현되는 사실들만이(B 사실들) 객관적인 사실에 해당하는가?
; B 이론은 이 세계에 궁극적으로 성립하는 모든 사실은 B 사실이라는 것이라 말한다
; A 사실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 무시제적 표현에 의해 표현되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즉 B 사실로 환원된다
; 시제적 문장이 참일 경우 그 시제적 문장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사실은 사실 무시제적 문장들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 시제적 표현은 궁극적인 이 세계의 성질을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 반면 A 이론에 따르면 이 세계에 성립하는 궁극적인 사실은 B 사실들만이 아니다
; 무시제적 문장들을 통해서는 표현될 수 없는, 본질적으로 시제적인 어떤 사실이 있다

(1) 철수는 지금 강의실에 있다
(2) 다음주 화요일 형이상학 수업은 없을 것이다
(3) 당신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형이상학을 수강한 것보다 더 과거의 일이다
; B 이론가들에 따르면 이 시제적 문장들이 표현하는 사실들의 성격은 궁극적으로 무시제적인 것일 뿐이다
; 무시제적인 문장들을 통해 이 사실들을 빠짐없이 표현할 수 있다

(1*) 철수는 2021년 5월 6일 오후 5시에 강의실에 있다
(2*) 2021년 5월 11일 형이상학 수업은 없다
(3*) 서울대학교 입학 사건은 형이상학 수강 사건보다 이르다
;
(1), (2), (3)이 표현하는 사실들은 모두 (1*), (2*), (3*)를 통해 의미의 손실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모든 시제 문장이 표현하는 사실은 결국 무시제적 문장이 표현하는 사실 다름 아니다
; 이때 ‘n년 n월 n일’은 시간사적으로 상대적 거리를 이야기할 뿐 ‘현재성’, ‘현재임’과 같은 성질을 담아내는 표현은 아니다

(4) 지금 독가스가 퍼져 있다
(4*) 2021년 5월 6일 오후 5시에 독가스가 퍼져 있다
; (4)와 같은 시제적 문장이 참이라고 하는 것은 (4*)와 같이 무시제적 문장에 의해서도 표현될 수 있다
; 그런데 이 예시에서 ‘지금’이라는 표현이 포착해내는 어떤 성질이 있는 것 같다
; (4)를 들으면 우리는 곧바로 코를 막고 도망치겠지만, (4*)을 들으면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 ‘2021년 5월 6일 오후 5시’는 그 자체로 현재성을 담지 못하는 것 같다
; (4)는 담고 있지만 (4*)는 담아내지 못하는 그것, 그 현재성이 없다면 우리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다
; ‘지금’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계의 객관적인 양상으로서의 현재성을 포착하는 표현인 것 같다
; 이처럼 현재성을 세계가 가지고 있는 어떤 객관적인 속성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 이에 대해 B 이론은 (4)를 다른 무시제적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4)가 표현하는 사실을 의미의 손실 없이 정교한 무시제적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한편 (4)와 (4*)가 완전히 의미상 동등하지는 않을 있다, 어떤 시제 문장은 어떤 특징 때문에 무시제적 문장으로 번역되지는 않을 있다
;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시제 문장이 고유하게 담아내고 있는 어떤 존재론적 성질로서의 현재성과 같은 것이 있다고 결론내릴 필요는 없다
; 단지 (4)가 (4*)으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B 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5) 여기 독가스가 퍼져 있다
(5*) 서울대학교 6동 102호에 독가스가 퍼져 있다
; (5)를 들으면 우리는 곧바로 뛰쳐나가겠지만, (5*)을 들으면 바로 같은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 이로부터 객관적인 ‘여기임’이라는 성질, 여기성, 이 세계에 객관적인 양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해야 하는가?
; (5)는 담고 있지만 (5*)는 담고 있지 못하는 ‘여기임’이라는 성질이 있어서, 그것이 우리를 뛰쳐나가게 하는 것인가?
; ‘여기임’은 어떤 장소나 세계가 객관적으로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성질이라기보다는, ‘여기’라고 하는 표현의 발화자가 발화의 맥락이 무엇이건 간에 그 발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자동적으로 지시하게끔 하는 것이다
; ‘여기’라는 표현이 지시하는 장소는 그 표현을 사용하는 발화자가 있는 장소이다
; 그 장소가 객관적으로 어떤 위치인지와는 별개로, (5)는 그 발화자가 위치한 장소에 독가스가 퍼져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 서울대학교 6동 102호만이 가지고 있는 ‘여기임’과 같은 성질을 객관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마찬가지로, ‘지금’이라는 표현은 그 표현을 사용하는 발화자가 처한 시간적 위치를 지시하게끔 사용되는 표현이다
; 그것이 객관적인 시간 좌표 내에서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더라도 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 이처럼 발화자가 사용하는 맥락에 의해 자동적으로 그것의 지시체가 결정되는 표현을 ‘지표적 표현(indexical term)’이라 부른다 ex. ‘여기’, ‘지금’
; ‘여기’라는 표현이 지표적 표현이라 해서 ‘여기임’이라는 존재론적으로 고유한 객관적 성질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처럼, ‘지금’도 지표적인 표현일 뿐 ‘지금임’, ‘현재임’, ‘현재성’과 같은 성질을 표현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 A 이론가들은 현재성이 세계의 객관적인 성질을 포착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B 이론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시간 좌표를 가지고 이 세계를 표상할 때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은 두 사건의 존재론적 지위를 그 자체로 보여주지 않는다
; 시간 좌표 상에 있어 어떤 사건은 과거에 속하고 어떤 사건은 현재에 속하는 것뿐이다
; 상대적 위치의 차이가 있을 뿐 두 사건에 있어서 존재론적 지위의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 A 이론은 시간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보는 입장(시간의 흐름이 이 세계의 객관적인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보는 입장)이며
; B 이론은 시간의 흐름을 주관적으로 보는 입장(흐른다는 것은 시간 좌표에 있어 나의 관점의 상대적 위치가 달라진 것뿐이라 보는 입장)이다
; 시간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세계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주관적 관점의 차이만을 반영하는 것인가?


시간과 관련된 존재론적 견해들의 분류를 생각해 보자
; 과거의 대상과 사건들, 현재의 대상과 사건들, 미래의 대상과 사건들에 대해 생각할 때 정말 이것들이 모두 동등하게 존재하는가 아니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현재론
; 현재 있는 대상과 현재 성립하는 사건만이 존재한다
; 과거의 사건이나 대상은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소크라테스가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우리의 존재론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미래의 사건이나 대상 또한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현재론
;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사건이나 대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대상이나 과거 사건은 현재 대상이나 현재 사건만큼이나 동등하게 존재한다
; 세계의 실제를 그린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제는 점점 성장하는 것이다(성장 덩어리 모형) (*쓸 때 실재와 실제가 헷갈렸음을 밝힌다..)
현재미래론
; 현재가 존재할 뿐 아니라 미래 대상이나 사건은 현재 대상이나 사건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 반면 과거 대상이나 사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실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이다(축소 덩어리 모형)
영원론
; 과거나 현재나 미래는 존재론적으로 동등하게 모두 존재하는 것들이다

현재론과 과거현재론, 현재미래론은 A 이론을 받아들이는가? 함축하는가?
; 현재론에서 ‘S가 현재의 것이다’라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그 사실은 현재성을 가지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 반면 ‘S가 과거의 것이다’라는 것은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현재론)
; 현재론에서 현재성은 이 세계의 객관적인 성질이 된다, 단지 어떤 사건들 사이의 좌표축에서의 관계를 통해 포착되는 것이 아니다
; 과거현재론에서 현재는 성장의 맨 끝에 있는 것, 가장 최신의 것이다
; 현재는 현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조금 지나면 현재성을 잃게 된다
; 현재론과 과거현재론, 현재미래론은 A 이론에 개입하고 있다(현재성의 실재성에 개입하고 있다)
; ‘현재임’이라는 것은 세계가 가지고 있는 관점 독립적인 어떤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 현재론에 따르면 어떤 것이 현재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과거현재론에 따르면 어떤 것이 현재적이라는 것은 성장하는 것의 가장 최신의 것이라는 것이다

영원론은 A 이론을 함축하는가? 현재성의 실재성을 함축하는가?
; 어떤 것이 ‘현재의 것이다’라는 것은 발화자의 위치에 해당하는 시점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그것으로부터 어떤 존재론적 함축이 따라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원론이 A 이론을 거부해야만 하는가? 현재성의 실재성의 부정을 함축하는가?
; 영원론이 참임을 받아들이면서도 현재성이 세계의 객관적인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 영원론에 따르면 어떤 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 사건은 현재 발생하는 사건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달리 어떤 현재성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발화자와 같은 시간축에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성은 관점상대적인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
; 영원론을 받아들이면서 현재임이라는 것은 관점 상대적 표현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고 현재성과 같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속성은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 시간의 흐름 역시 일종의 주관적인 관점상대적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어떤 객관적인 세계의 양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영원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시간의 흐름이 실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가?
; 영원론을 취하여 모든 것들이 모두 동등하게 존재한다 생각하되, 어떤 조명이 그것들을 비추고 있어서 그 조명이 이동한다면, ‘현재성’이라는 속성이 실재성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생생한 그런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는 여전히 있을 수 있다(이동하는 조명 모형)
; 이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현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어떤 것이 과거이다, 미래이다와는 달리 현재적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질적 차이가 있다

; 현재론, 과거현재론, 현재미래론은 현재임의 실재성에 개입하고 있고 A 이론을 수용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영원론은 다소 복잡하다, 영원론을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은 B 이론을 받아들이고 시간의 흐름을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영원론을 받아들이면서도 A이론, 시간의 흐름 현상을 객관적인 현상으로 수용할 이론적 여지는 남아 있다


물리적인 대상은 공간 안에 있고, 공간은 3차원적이다
; 물리적인 대상은 3차원 안에서 연장되어 있다
; 어떤 한 대상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그 대상의 지역이라고 불러 보자
; 어떤 대상의 지역은 공간 좌표, 세 개의 좌표축을 통해 표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때 대상의 운동은 어떻게 표상할 수 있을까?
; 공간 좌표계만을 통해서는 대상의 운동을 표상할 수 없다, 시간 축이 필요하다
; 대상이 단위시간당 어떤 비율로 운동하고 있는지 표상하기 위해, 공간 축뿐 아니라 시간 축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 어떤 대상을 한 시점에 한 점에서 표상하지 않고 그 대상의 운동을 표상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공간축 이외에 네 번째 시간축을 도입해야 한다
; 이처럼 시간축을 표상의 방법적인 기제로 도입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 세 개의 공간 축은 그 안에 물리적 대상이 연장되어 있는 3차원을 표상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 공간이라는 3차원의 실재성이 있고, 세 공간 축은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 대상의 운동을 표상하기 위해서는 네 번째 시간 좌표축을 도입해야 한다
; 이 네 번째 시간 축이 3차원 공간 축이 3차원으로 연장되어 있는 대상을 반영하는 그런 방식으로, 물리적 대상이 또한 새로운 차원으로 연장되어 있는 그런 차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간에 대한 어떤 것을 편의상 좌표축을 통해 표상하고 있는 것뿐인가?

; 일상적인 직관에 따르면 시간은 공간 차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지역별 미세먼지 농도를 표상하기 위해 우리는 지역과 농도를 축으로 하는 미세먼지 농도 분포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
; 그렇다고 해서 미세먼지 농도를 표상하기 위해 설정한 좌표축이 지역을 표상하는 차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또 다른 차원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이처럼 공간과 시간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 (3차원주의)
; 우리의 시간 축은 공간이 3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실재한다, 우리의 지각은 3차원의 한 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시간 축은 그 물리적 대상이 3차원 공간에 연장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것 안에 연장되어 있게 되는 또 다른 4번째 차원을 반영하는 것이다 (4차원주의)

현재론은 3차원주의를 받아들인다
; 공간 안에서 대상이 있고 속성의 변화를 겪기는 하지만, 시간은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영원론은 4차원주의를 받아들인다
과거현재론이나 현재미래론은 4차원주의를 받아들인다
; 시간축이 하나의 실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