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독] The Meaning of ‘Meaning’, Putnam

Putnam, “The Meaning of ‘Meaning'”, p131-152

현대 언어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잘 다루고 있지 않다
; 구문론(syntax)에 비해 의미론(semantics)이 발전되지 않은 것은, 과학 이전의 의미 개념(the prescientific concept of meaning)에 대한 논의 가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의미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의론적인 혹은 유명론적인 주장이 있었지만, 사실 논의의 결론은 의미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의미가 우리의 생각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다르다)
; 이전까지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한 채 논의하자

의미와 외연(Meaning and extension)

; 늦어도 중세시대부터 의미론 연구자들은 애매한 개념인 의미를 외연과 내포, 뜻과 지시체 등 용어 쌍들을 통해 탐구하고자 했다
; 단어의 외연은 그 단어가 참되게 적용되는 대상들의 집합이다
; 외연 개념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 예-아니오가 가능한 집합 개념과는 달리, 자연언어의 단어들은 대부분 예-아니오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 각 원소가 어떤 집합에 속하는 정도가 존재하는 퍼지 집합을 도입해 볼 수 있다
; 한 단어가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 의미에 따라 각각을 다른 단어로 볼 수 있다
; ‘심장을 가진 생물’과 ‘신장을 가진 생물’을 비교해 보았을 때 두 용어의 외연은 같지만 둘은 분명히 의미에 있어 차이가 있다 > 의미가 외연과 같다고 할 수 없으며, 외연 외에 단어가 의미의 요소로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어의 내포 개념이 도입된다

내포와 외연(Intension and extension)

; 외연의 관념(notion)은 꽤 정밀한데 반해, 내포의 관념은 ‘개념(concept)’이라는 모호한 관념만큼만 정밀하다
; 전통적인 철학자들은 개념을 무언가 정신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 이에 따르면 단어의 의미는 정신적인 존재자가 된다(심리주의, psychologism)
; 프레게와 카르납은 심리주의에 반대하여, 의미가 다양한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포착되므로, 의미는 공적인 속성을 지니며 개념은 정신적 존재자가 아닌 추상적 존재자라고 말했다
; 하지만 이러한 추상적 존재자를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개인의 심리작용으로 보았으며, 어떤 철학자도 단어의 내포를 아는 것이 특정한 심리 상태에 있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 한편 ‘심장을 가진 생물’과 ‘신장을 가진 생물’의 사례에 있어 그 역인 ‘내포가 같지만 외연이 다른 두 용어’가 불가능함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흥미롭게도 이 불가능에 대한 논증이 제시된 적은 없다
; 아마 용어의 개념(내포)이 언제나 그 외연을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가정 때문이었던 듯하다

의미 이론은 의심없이 받아들여진 두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1) 단어의 의미(내포)를 아는 것은 특정한 심리 상태에 있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2) 단어의 의미(내포)는 단어의 외연을 결정한다, 내포의 동일함은 외연의 동일함을 함의한다

; 퍼트넘은 어떠한 의미 개념도 두 가정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전통적인 의미 개념이 잘못된 이론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심리 상태’와 방법론적 유아론

; ‘심리 상태’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살펴보자
; 상태(state)는 개체와 시간을 논항으로 하는 이항 술어이며, 심리 상태란 단순히 심리학에서 연구되는 상태다(넓은 의미의 심리 상태)
; 전통철학자들은 심리 상태에 대해 논할 때 방법론적 유아론을 가정한다
; 이러한 가정에서 모든 심리 상태는 그 상태에 있는 주체를 제외한 다른 어떤 개체의 존재도 상정하지 않는다
; 이 가정은 제한적인 프로그램(restrictive program)을 채택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심리 상태의 범위와 본성을 제한한다
; 가령 ‘x가 y를 질투함’은 x와 y의 존재를 함의하고 ‘x가 z에 대한 y의 관심을 질투함’은 x, y, z의 존재를 함의하므로, 방법론적 유아론에 따르면 ‘질투함’과 ‘누군가에 대한 다른 누구의 관심을 질투함’은 심리 상태가 아니다

; 방법론적 유아론에서 허용하는 심리 상태를 좁은 의미의 심리 상태라 하자
; 이제 가정 1에 따르면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은 좁은 의미의 심리 상태에 있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된다
; 외연이 다른 임의의 단어 A와 B가 있을 때, 가정 2에 따르면 A와 B는 내포가 달라야 한다
; 가정 1에 따르면 A의 의미를 아는 것과 B의 의미를 아는 것은 좁은 의미의 심리 상태이다
; 이 심리 상태는 내포가 그렇듯 A와 B의 외연을 결정해야 한다
; 외연이 다른 두 단어 A, B에 대해 A의 의미를 아는 것과 B의 의미를 아는 것이 같은 상태일 수는 없다
; A의 의미를 아는 것은 단지 A의 내포를 포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포착한 내포가 A의 내포임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A와 B가 다른 단어라면, A와 B의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와 관계없이, A의 의미를 아는 것은 B의 의미를 아는 것과 다른 상태이다
; 같은 논리에 따른다면 I1과 I2가 서로 다른 내포이고 A가 어떤 단어일 때, I1이 A의 의미임을 아는 것과 I2가 A의 의미임을 아는 것은 서로 다른 심리 상태이다
; 따라서 오스카가 서로 다른 두 가능세계 L1과 L2에서 같은 좁은 의미의 심리 상태에 있으면서, L1의 오스카는 A가 I1의 의미를 가진다고 이해하고 L2의 오스카는 A가 I2의 의미를 가진다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A가 I1의 의미를 가진다고 아는 심리 상태와, A가 I2의 의미를 가진다고 아는 심리 상태는 다르기 때문)

; 즉 A의 외연을 결정해 주는 조건은, 화자가 A가 I의 의미를 가지는 것을 아는 심리 상태에 있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똑같이 작동한다 > 심리상태가 같다면 내포가 같다

; 오스카와 엘머가 단어 A를 다르게 이해했다면 그들은 서로 다른 심리 상태에 있다

; 화자의 심리 상태는 단어의 내포를 결정하고, 이때 가정 2에 의해 단어의 외연을 결정한다

; 퍼트넘은 이러한 결론이 틀렸음을 보이고자 한다, 즉 두 화자가 같은 좁은 의미의 심리 상태에 있으면서 단어의 외연이 서로 다른 경우가 가능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 퍼트넘에 따르면 단어의 외연은 심리 상태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의미는 머릿속에 있는가?

; 심리 상태가 단어의 외연을 결정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쌍둥이 지구를 상상해 보자
; 쌍둥이 지구는 지구와 거의 똑같지만, 물이 H2O가 아니라 XYZ의 분자식을 이룬다
; 두 지구에서 사람들이 ‘물’이라고 부르는 것의 표면적인 성질은 모두 같다
; 지구인이 쌍둥이 지구에 온다면, 처음에는 단어 ‘물’이 지구와 쌍둥이 지구에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쌍둥이 지구의 물이 XYZ임을 발견한 후 “쌍둥이 지구에서 단어 ‘물’은 XYZ를 의미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 마찬가지로 쌍둥이 지구인이 지구에 온다면, 처음에는 단어 ‘물’이 쌍둥이 지구와 지구에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지구의 물이 H2O임을 발견한 후 “지구에서 단어 ‘물’은 H2O를 의미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 쌍둥이 지구와 지구 양쪽 모두 화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1750년을 상상해 보자
; 지구인은 물이 H2O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쌍둥이 지구인은 물(그들이 ‘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XYZ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모른다
; 평범한 지구인 오스카1과 쌍둥이 지구의 상대역 오스카2를 가정하자
; 물에 대해 오스카1만이 가지고 오스카2는 가지지 않는 믿음은 없다
; 지구에서 단어 ‘물’의 외연은 1950년이든 1750년이든 동일하게 H2O이며, 쌍둥이 지구에서도 단어 ‘물’의 외연은 1950년이든 1750년이든 동일하게 XYZ이다
; 오스카1과 오스카2는 같은 심리 상태에 있었음에도(H2O와 XYZ를 구별하지 못하므로) 단어 ‘물’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그들이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50년 정도는 더 걸렸겠지만)
; 따라서 단어 ‘물’의 외연은 화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함수가 아니다

; 그런데 이때 우리는 왜 단어 ‘물’이 각 지구에서 1750년과 1950년에 같은 외연을 가지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 내가 한 잔의 물을 가리키며 “이것은 물이라고 불린다”라고 말했을 때, 내 즉물적 정의는 다음과 같은 경험적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 내가 가리키는 이 액체는 나와 다른 언어공동체 화자들이 다른 때에 ‘물’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어떤 것과 특정한 동일성 관계를 가진다
; 이 동일성 관계는 이론적 관계로, 어떤 것이 그것과 같은 액체이냐 아니냐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양의 과학적 탐구를 거쳐야 할 것이다
; 나아가 과학적 탐구를 통해 어떤 ‘분명한’ 답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 답은 취소될 수 있다(defeasible)
; 따라서 1750년에 누군가 XYZ를 ‘물’이라고 불렀지만 그의 후손들이 1800년이나 1850년에 XYZ를 ‘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물’의 의미가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한 가지 사고실험을 더 해 보자
; 지구인은 알루미늄을 ‘알루미늄’으로, 몰리브덴을 ‘몰리브덴’으로 부르지만(지구에는 알루미늄이 많고 몰리브덴은 거의 없다)
; 쌍둥이 지구인은 알루미늄을 ‘몰리브덴’으로, 몰리브덴을 ‘알루미늄’으로 부른다(쌍둥이 지구에는 몰리브덴이 많고 알루미늄은 거의 없다)
;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냄비가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몰리브덴으로 만들어진 냄비와 구별되지 않는다
; 지구인이 쌍둥이 지구에 온다면, ‘알루미늄 냄비’라 불리는 것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금속공학자 지구인은 아주 쉽게 ‘알루미늄’이 몰리브덴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금속공학자가 아닌 지구인 오스카1과 쌍둥이 지구인 오스카2는 ‘알루미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같은 심리 상태에 있다
; 그러나 오스카1의 개인어 ‘알루미늄’의 외연은 알루미늄이고, 오스카2의 개인어 ‘알루미늄’의 외연은 몰리브덴이다
; 오스카1과 오스카2는 ‘알루미늄’으로 서로 다른 것을 의미했지만, 둘은 같은 심리 상태에 있었다

; 이번에는 실제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자
; 우리는 느릅나무(elm)와 너도밤나무(beech)를 구별하지 못하지만, 나의 개인어 ‘느릅나무’의 외연은 다른 사람들의 ‘느릅나무’의 외연과 같이 느릅나무 전체 집합이고, 나의 개인어 ‘너도밤나무’의 외연은 다른 사람들의 ‘너도밤나무’의 외연과 같이 너도밤나무 전체 집합이다
; 즉 나의 개인어 ‘느릅나무’와 ‘너도밤나무’의 외연은 서로 다르다
; 그러나 이러한 외연의 차이는 우리의 어떤 개념에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느릅나무에 대한 나의 개념과 너도밤나무에 대한 나의 개념은 정확히 같다
; 만약 누군가 ‘느릅나무’와 ‘너도밤나무’의 외연의 차이가 나의 심리 상태의 차이에 의해 설명된다고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쌍둥이 지구를 상상해 보면 된다
; 단어 ‘느릅나무’와 ‘너도밤나무’ 서로 바뀐 쌍둥이 지구를 생각해 보자(쌍둥이 지구인은 느릅나무를 ‘너도밤나무’로, 너도밤나무를 ‘느릅나무’로 부른다)
; 나와 쌍둥이 지구의 내가 ‘느릅나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둘은 같은 심리 상태에 있겠지만 두 단어의 외연은 다르다

∴ “의미”는 머릿속에 있지 않다

사회언어 가설

; 언어적 노동의 분업이 있다
; 아무도 느릅나무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느릅나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힘들겠지만, 한편 그러한 구별이 중요한 모든 사람들이 구별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 가령 금이 중요한 모든 사람은 ‘금’이라는 단어를 획득해야(acquire) 하겠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이 금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을 획득할 필요는 없다
; 그런 사람들은 특정한 분류의 화자 집합(전문가들)에 의지할 수 있다
; 고유명과 관계를 맺고 있는 특징들(외연의 결정 조건, 외연에 포함되는지 구별하는 방법)은 그 언어 공동체 안에 집합체(collective body)로 존재하게 된다
; 언어적 노동의 분업이 필요하지 않은 단어들도 있다 ex. ‘의자’
;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노동의 분업이 증가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단어들이 이러한 종류의 노동의 분업을 나타내고 있다
; 가령 단어 ‘물’은 화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노동의 분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 오늘날 대부분의 성인 화자들은 ‘물은 H2O다’라는 필요충분 조건을 알고 있지만, 극소수의 성인 화자만이 피상적으로 물을 닮은 액체와 물을 실제로 구별할 수 있다
; 의심되는 상황에서 다른 화자들은 전문가 화자들에게 그 판단을 맡길 수 있다
; 전문가 화자들은 언어적 집합체(collective linguistic body)로서 그 구별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물에 대해 가장 엄선된(the most recherche) 사실은 그 단어의 사회적 의미의 일부가 된다 – 집합체의 모든 각 구성원이 그 구별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어를 획득한 대부분의 화자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 모든 언어 공동체는 어떤 종류의 언어적 노동 분업을 한다
; 즉 단어와 결부된 ‘기준’이 그 단어를 획득한 화자 중 특정 집합의 화자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다른 화자들에 의한 단어의 사용이 그 화자들과 특정 집합의 화자들 사이의 구조화된 협동관계에 기반해 있는, 그런 단어를 가진다
; 어떤 단어가 언어적 노동 분업되어 있을 때, 그 단어를 획득한 ‘보통의(average)’ 화자들은 그 단어의 외연을 고정시키는 어떠한 것도 획득하지 않는다
; 특히, 화자 개인의 심리 상태는 분명히 단어의 외연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 그 화자가 포함된 언어적 집합체의 사회언어적 상태만이 단어의 외연을 고정시킨다

지시성과 고정성(Indexicality and rigidity)

; 1750년 지구와 쌍둥이 지구에서 ‘물’의 사례는 언어적 노동의 분업을 포함하지 않는다
; 1750년 지구에는 물에 대한 어떤 전문가도 없었고, 쌍둥이 지구에도 ‘물’에 대한 어떤 전문가도 없었다
; 해당 사례는 지시 이론과 필연적 참 이론에 있어 근본적으로 중요한 어떤 것을 포함한다

; 자연종 용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 하나는 즉물적 정의(ostensive definition)를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구를 통하는 것이다
; 기술구는 종의 특징에 대한 전형/원형(stereotype)으로 이루어져 있다
; stereotype의 주요 특징들은 기준(criteria)이 되어 어떤 대상이 어떤 종에 속하는지 판별하는 데 쓰인다
; 언어 공동체에서 집합체로 사용되는 모든 기준이 stereotype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며, 몇몇 경우 stereotype은 상당히 약하다
; 가령 느릅나무의 stereotype은 단지 일반적인 낙엽성 나무의 stereotype이고, 이는 느릅나무를 구별하기에 부족하다
; 한편 호랑이나 레몬의 stereotype은 그 구별을 가능하게 해 준다

; 나와 컵이 존재하고 내가 컵을 가리키며 “이것은 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두 가능세계 W1과 W2를 가정하자
; W1의 컵은 H2O로 가득차 있고 W2의 컵은 XYZ로 가득차 있다
; W1은 실제세계고 XYZ는 W2에서 ‘물’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 이때 ‘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두 이론이 존재한다

(1) ‘물’의 의미는 일정하지만 세계에 대해 상대적이다. 즉 ‘물’은 W1과 W2에서 의미가 같지만 W1에서는 H2O, W2에서는 XYZ이다(의미는 같고 지시체가 다르다)

(2) 모든 가능세계에서 물은 H2O이다. W2에서 ‘물’이라고 불리는 것은 물이 아니며 ‘물’은 W1과 W2에서 의미가 다르다(지시체는 같고 의미가 다르다)

; 쌍둥이 지구 사례에서 퍼트넘이 말했던 것이 옳다면, 참인 이론은 (2)이다
; ‘물’은 실제세계에서 ‘이것’이라고 지시된 액체와 동일성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1′) (모든 가능세계 W에 대해) (W의 모든 x에 있어) (x는 물이다 ≡ x는 W에서 ‘이것’이 지시하는 존재자와 동일성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2′) (모든 가능세계 W에 대해) (W의 모든 x에 있어) (x는 물이다 ≡ x는 실제세계 W1에서 ‘이것’이 지시하는 존재자와 동일성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 크립키는 지시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모든 가능세계에서 같은 개체일 때 그것을 고정지시어라고 불렀다
; 그러한 고정성 개념을 물질명(substance names)로 확장시킨다면, 용어 ‘물’은 고정적이라고(the term ‘water’ is rigid)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물’의 고정성은 퍼트넘이 실물 지시적 정의를 통해 의도했던 것이 (1′)이 아니라 (2′)이라는 것에서 따라나온다
; 우리는 또한 크립키로부터 ‘이것은 물이다’라고 했을 때 지시사 ‘이것’ 또한 고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단어 ‘물’에 대한 이러한 의미 이론은 필연적 참에 대한 이론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준다
; W1의 어떤 액체가 W2의 어떤 액체와 같은 중요한 물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두 액체는 동일성 관계(동일한 액체 관계, sameL)를 맺는다
; 일단 우리가 물의 본성(물은 H2O다)을 발견한다면 물이 그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물이 H2O가 아닌) 가능세계는 가능세계로 여겨지지 않는다, 물이 H2O가 아닌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 상상가능성은 논리적 가능성의 증거가 되지 않으며, 형이상학적으로 필연적인 문장이 인식론적으로 우연적일 수 있다
; 칸트 이래로 철학자들은 모든 필연적 참이 분석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과 선험적이며 종합적인 필연적 참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나뉘었지만(칸트는 선험적 참이면서도 종합적 참인 문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ex. 수학의 문장), 누구도 (형이상학적) 필연적 참이 경험적 참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지금’, ‘이것’, ‘여기’처럼 지시사(indexical) 혹은 사례-재귀적인(token-reflexive) 단어들, 즉 맥락이나 사례에 따라 외연이 달라지는 이런 단어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내포가 외연을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이론을 적용시키지 않았다
; 지구의 나와 쌍둥이 지구의 내가 ‘나는 머리가 아프다’라고 했을 때, 같은 단어 ‘나’가 다른 외연을 가지는 것을 나 자신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지 않았다

; 지시성은 명백히 지시적인 단어와 형태소를 넘어 확장된다
; ‘물’과 같은 단어들은 간과되었던 지시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 ‘물’은 여기 근처의 물과 동일성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 다른 시간이나 다른 장소, 나아가 다른 가능세계의 물이 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물’과 동일성 관계를 맺어야 한다
; 단어가 개념과 같은 어떤 것인 ‘내포’를 가지고 있고, 그 내포가 단어의 외연을 결정한다는 이론은 지시사 ‘나’에 대해 참일 수 없었던 것과 동일한 이유로 ‘물’과 같은 자연종 용어에 대해서도 참일 수 없다
; 그러나 자연종 용어가 지시적이라는 이 이론은, 지구의 ‘물’과 쌍둥이 지구의 ‘물’이 의미가 같되 외연이 다르다고 함으로써 의미(내포)가 외연을 결정한다는 믿음을 포기해야 할 것인지, 혹은 외연의 차이는 의미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함으로써* 의미가 정신적인 존재자인 개념과 같은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해야 할 것인지 결론짓고 있지는 않다

; 자연종 용어가 고정지시어라는 크립키의 학설과 자연종 용어가 지시적이라는 우리의 학설은 같은 것을 설명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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