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독] Philosophy of Science, Alexander Bird

Alexander Bird, <Philosophy of Science>

Chapter 3. Natural Kinds

Kinds and classifications

basic kinds of things 와 less basic kinds of things 사이의 구별을 위한 시도

; less basic kinds of thing 간의 차이점은 nature of the basic kinds로 설명 가능
;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들의 배합으로 물질을 설명하려는 시도, 중세 연금술사들의 납을 금으로 바꾸려는 시도 등이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고대・중세인들은 “nature itself has fixed the kinds of things there are”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원소와 자연종 개념에 대한 엄밀한 설명을 시도하면, 몇 가지 어려운 케이스가 나타난다

; 자매종(sibling species)은 형태학적으로/해부학적으로 구별 불가능하지만 상호교배 가능성으로 종을 정의했을 때 다른 종에 속한다
; 과일과 채소를 청과물점에서 분류한 것과 식물학자가 분류한 것은 다르다
; 같은 대상을 분류하는 두 가지 방법(biological, culinary)이 존재하지만, 청과물점의 분류는 human interest에 따르는 것이고 식물학적 분류는 biological feature에 따르는 것으로, 그리고 후자가 더 자연적인(natural) 것으로 보일 것이다
; 하지만 후자가 더 자연적인 것이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정의에 쓰인 용어들이 자연적인 것이어야 할 것, 이렇게 되면 fruit의 정의는 seed의 정의로, seed의 정의는, .. 계속 내려간다
; 이러한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면 대상에서 종으로 가는 완전한 자연적인 분류는 불가능한 것 같다, 우리가 과학에서 혹은 다양한 목적에서 사용하는 분류체계는 있지만 과학에서 다른 분류체계가 사용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 우리의 분류체계는 정말 단지 ‘우리의’ 분류체계인가?

The descriptive view of kinds

sense, extension, reference

; 의미(sense) 혹은 내포(intension)는 어떤 것이 어떤 종에 속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그 용어의 능숙한 사용자라면 용어의 의미는 알고 있어야 한다
; 외연(extension)는 종에 속하는 것의 집합, 즉 의미를 구성하는 속성을 가지는 것들의 집합
; 지시체(reference)는 추상적인 존재자
; 자연종에 대해 이렇듯 접근하는 입장을 기술주의적 입장이라 한다
; 그러나 다리가 세 개이거나 알비노인 호랑이도 여전히 호랑이인 것처럼, 자연종에는 수많은 가능한 예외가 존재한다
; 따라서 어떤 종에 속하기 위해 그 종에 속하기 위한 모든 속성을 가지는 대신 충분히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입장이 등장한다(cluster view, 다발 기술주의)
; 또한 한 용어는 그 외연이 유지되는 한 의미가 바뀔 수 있다 ex. “water”
; 기술주의적 입장에 따르면 자연종은 “명목상의 본질(nominal essence)”을 가지고 있다
; 명목상의 본질은 내포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에, 내포와 마찬가지로 그 용어의 능숙한 사용자라면 명목상의 본질은 알고 있어야 한다

An essentialist view of kinds

; 기술주의적 입장은 자연종이 명목상의 본질을 가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크립키의 비판: 명목상의 본질은 자연종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호랑이의 명목상의 본질은 ‘육식성이고, 다리가 네 개이고, 검정색과 노란색의 줄무늬를 가지고, 고양이과의 동물이고, 커다란 포유류이다’
; 기술주의적 입장에 따르면 어떤 대상이 호랑이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속성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그러나 크립키에 따르면 우리는 호랑이가 명목상의 본질을 구성하는 이러한 속성들 중 어떠한 속성도 가지지 않은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 만약 호랑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온전히 호랑이를 정글에서 직접 본 탐험가들의 보고에서 얻어진 것이라 상상하자. ~ 사실 그것은 파란색이고, 다리가 다섯 개이고, 겁이 많고 초식성이며, 동물이 아니라 로봇일 수 있다. 즉 탐험가들이 본 호랑이는 탐험가들이 호랑이가 가진다고 믿었던 속성들 중 어느 것도 가지지 않았을 수 있다
; 이때 호랑이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이름 “호랑이”의 사용자들이 호랑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속성 중 겹치는 것은 없다. 호랑이는 명목상의 본질을 가지지 않는다.
; 그럼에도 탐험가들이 본 놀라운 생물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호랑이에 대해(파란색이고 다리가 다섯 개인 호랑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만 그 호랑이가 제시되고 있던 명목상의 본질과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퍼트넘의 비판: 명목상의 본질은 자연종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 H2O인 지구와 XYZ인 쌍둥이 지구를 상상해 보자
; H2O와 XYZ는 피상적으로 관찰할 때 모든 면에서 같다
; 오늘날 우리는 두 액체의 화학적 조성이 다름을 알 수 있는 화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지구의 물과 쌍둥이 지구의 물을 구분할 수 있다
; 그러나 1750년 두 행성에 살던 사람들은 관련된 화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해서 두 물질을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퍼트넘에 따르면, 그때에도 여전히 두 물질은 존재했다. 1750년 지구의 화자들이 사용한 “물”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지금 H2O라 아는 것을 가리켰을 것이며, 1750년 쌍둥이 지구의 화자들이 사용한 “물”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지금 XYZ라 아는 것을 가리켰을 것이다. 즉 두 집단에서 “물”의 외연은 달랐다
; 그러나 이때 물의 명목상의 본질은 두 집단에게 같다. 두 집단은 모두 “물은 무색 무취이며 100도에서 끓고 0도에서 어는 액체이다”라는 명제에 동의했을 것이다
; 따라서 명목상의 본질은 용어 “물”의 외연을 고정시키는 데에 충분하지 않다

퍼트넘은 대신하여 외연을 고정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전형(archetype)을 제시한다

; 전형들은 종 용어와 연관되어 있으며, 동일종 관계(same kind relation)를 통해 종 용어의 외연을 고정시킨다
; 두 대상이 적절한 과학적인 면에서 동일하면 그 두 대상은 동일종 관계를 맺는다 (typically that they behave in nomically identical ways)
; 이러한 동일종 관계는 근본적인 구조나 속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 대상은 동일종 관계를 맺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동일종 관계를 맺고 있을 수 있다
; 따라서 H2O는 H2O의 전형과만 동일종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지구의 누군가가 빗물을 가리키며 “물은 이런 것과 같은 것이다(water is whatever is like this)”라고 말한다면 XYZ가 아닌 H2O만을 고르는 것이 된다

이러한 퍼트넘의 견해에서 크립키의 호랑이를 분석해 보면

; 탐험가들이 본 호랑이는 그들의 언어 “호랑이”의 전형이다
; 어떤 것을 호랑이로 만드는 것은 그것의 유전적 구조이다
; 호랑이에 대한 ‘육식성이고, …’라는 기술은 호랑이의 명목상의 본질이 아니며, 오히려 호랑이에 대한 거짓된 경험적 기술이다

크립키와 퍼트넘 종합

; 자연종은 명목상의 본질을 가지지 않는다
; The basic idea employed in both their examples is that of a sample or an archetype, which defines a kind via a “same kind relation” – to be of the kind something must be just like the sample.
; 같은 종은 과학에 의해 발견된다. 같은 분자식을 가지거나 같은 유전적 구조를 가지는 .. 이러한 속성들이 어떤 종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하는 것들이고, 명목상의 본질과 다르게 명시적인 언어적 정의의 일부가 아니며 내포가 아니다. 그러한 속성을 종의 실질상의 본질(real essence)라고 한다
; 실질상의 본질의 존재를 주장하며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과학의 일이라 믿는 이러한 입장을 본질주의(essentialism)이라 한다
; 종의 몇몇 속성들은 달라질 수 있지만, 종의 본질이 되는 속성들은 다른 것일 수 없다

Problems with Kripke-Putnam natural kinds

크립키와 퍼트넘의 지적

; 같은 표면적인 특징들을 공유하는 종이 하나 이상일 수 있다. 즉, 우리가 같은 종의 여러 샘플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다른 종들의 예시들일 수 있다 ex. Jade

그런데 이때 사용되었던 유사함의 기준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 같다

; 우리가 “어떤 것은 그것이 이 샘플과 같은 미세 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오직 그 경우 금이다”라고 말할 때, “미세 구조”를 통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 퍼트넘의 사례에서 18세기 사람은 미세 구조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의도했던 것은 단지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물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에 뒤이어 과학이 ‘같은 것’이 ‘같은 분자 구조를 가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같은 분자 구조를 가지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의도하기는커녕 가지고 있을 수도 없는 개념이다
; 한 가지 가능한 방향은 ‘같은 것’이 ‘모든 면에서 완전히 같은 것’을 의미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같은 분자구조를 포함하는 데에는 성공적이겠으나, 순도와 같은 것까지 포함하게 되므로 18세기의 누군가 특정한 물 샘플을 가리켰을 때 그것과 같은 물이 되기 위해서는 같은 정도의 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 ‘모든 면에서 완전히 같은 것’이 지나치게 강함을 확인하고 같음의 개념을 ‘모든 과학적으로 중요한 면에서 같은 것’으로 조금 완화시킨다 해 보자. 그렇다면 이제 (과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특정 순도를 가진 물과 시안화칼륨 희석액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 답이 될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아무도 물의 개념을 고정시키기 위해 어떤 하나의 특정한 샘플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원형은 오히려 단일한 고립된 샘플이 아니라 샘플들의 느슨한 모음과 같다
; 그런데 이렇게 같음을 정의하면 샘플들간의 작은 다름이 문제가 된다. 가령, 동위 원소, 이성질체, 동소체로 인해 화학 원소나 화합물은 자연종으로 취급할 수 없게 된다. 퍼트넘의 18세기 지구와 쌍둥이 지구에서 공동체가 제시한 물 역시 자연종이 아니라 수소와 산소의 다양한 동위원소들의 조합이 된다
; 사실 이렇듯 자연종을 골라내는 일은 무척 어렵다
; 비슷한 문제는 생물학에도 적용되고, 어쩌면 모든 각 개체가 유전적으로 다르기에 그 각각이 자연종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결국 중첩된 종(nested kinds)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대상들을 분류할 때 몇 가지 속성들을 공유하고 몇 가지는 공유하지 않는다면, 그중 어떤 속성들이 자연적인 분류를 보장해 주는가?

Natural kinds and explanatory role

앞선 논의처럼 크립키-퍼트넘의 관점에 따르면 종은 단일한 동위원소로 이루어진 원소나 아원자 입자처럼 완전히 동일한 종류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종을 명명하는 기작 – 전형으로서 기능하는 샘플을 사용하는 것 – 은 이러한 종들에 부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 가령, 샘플 전자를 얻어서 종을 명명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 보자. 그러나 실제 전자 개념이 도입된 것은 그처럼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전자는 전하의 단위가 아니라 입자의 이름). 이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분명한 원형이라기보다는 전기분해와 음극선과 같은 어떤 현상들이었다. 원형의 역할을 하는 것은 현상이었고 종은 그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그러한 종이었다
; 이렇기 때문에 자연종을 의도하고 용어를 도입했지만 그러한 종은 없어서 실패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ex. 플로지스톤

이처럼 자연종 개념은 그들의 설명적 역할에 의해 의미를 얻는다

; 자연종과 설명적 역할 사이의 연결관계는 non-basic kinds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결론적으로,

; 설명 가능성과 자연법칙의 존재에 기초한 객관적인 자연종이 있다
; 그러나 종 개념이 모든 각 존재자가 하나의 자연종에만 속한다고 보는 관점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 다양한 종 관계가 있을 수 있다

Laws and natural properties and quantities

자연종에 대한 논의는 법칙 개념에 영향을 미친다

; 법칙에 대한 최소주의자(minimalist)는 속성과 관계가 법칙과 무관하다고 본다. 다른 가능세계에서는 같은 속성이 다른 규칙성을 가지고 나타나 다른 법칙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 반대한다. 설명은 자연법칙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에, 자연적 속성이나 양(quantity)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자연법칙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수반한다. 이는 과학사를 살펴봤을 때 역시 확인할 수 있다
; the discovery of the quantity came after the discovery of the existence of the laws it is part of, and the concept of electric charge is dependent on these laws – what we mean by “charge” must be explained by reference to these laws

A problem for natural kinds

자연종이 설명적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이 자연법칙에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 자연종은 nomic necessitation을 통해 보편자에 상응한다
; 즉, 만약 F가 자연법칙에 나타나는 보편자라면, F는 자연종을 이룬다
; (자연법칙이 아니라면 법칙과 같은 사실들 law-like truths에라도 나타난다)

자연법칙에 대한 앞선 논의를 떠올려 보자 (다른 챕터)

; 법칙이 되기 위한 기준은 그것이 모든 것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공리화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단순성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한다
; if we used different predicates we could turn a simple axiom into a complicated one, and vice versa. And so, in order to get a determinate notion of simplicity going, it looks as if we need to specify a set of predicates in advance.

; 자연법칙 개념과 자연종 개념 사이에는 순환성이 있다 (자연법칙 명제에 나타나는 술어는 자연종 술어; 술어의 선택은 인위적, 자연법칙이 무엇인지는 자연종이 무엇이냐에 의존; 자연종을 자연법칙의 보편자에 상응하는 종으로 정의하는 것은 사소하게 참이며 쓸모없음; 순환)
; sapphires / rubies / blue / red / sapphuby / rubire / bled / rue 에서 “사파이어는 파랗고 루비는 빨갛다”와 “sapphuby is bled and rubires are rue”라는 두 체계는 똑같이 강력하고 똑같이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이 자연법칙이고 자연종인지 구별할 수 없다
; 우리가 어떤 것이 진짜 자연법칙과 자연종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가 진짜이고 다른 것들은 진짜가 아니라 말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어떠한 개념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가능한 입장들

; 최소주의자들은(minimalists) 법칙과 종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정말로 공허하다고 결론짓거나, 법칙과 종은 높은 수준의 임의성을 가진 채로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어떠한 분류체계든 선택할 수 있으며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단지 분류의 목적에 달려 있을 것이다
; 반면 이론가들에게(theorists) 자연법칙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아니라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며, 설명과 귀납,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들은 법칙과 종이 본질적으로 임의적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론가들을 위한 가능한 설명

; 개념적 순환성은 한 개념의 구체적인 예시를 줌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종의 예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선천적인 인간 능력이다(Darwinism). 즉 자연종과 자연법칙의 체계는 자연종을 찾는 선천적인 능력에 대한 가정 위에서 지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과학의 성찰(reflexivity of science)이 더해졌을 때 자연적 분류가 가능한 것이다
; While science may have started out taking most of our intuitions for granted, it is now able to question those intuitions, justifying them where it can and rejecting and replacing them where necessary.
; The approach is holistic. The answer is that the two evolv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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