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철학] 스트로슨과 도넬란의 기술이론 비판

본 [언어철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0년 1학기 서울대학교 ‘언어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핸드아웃을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스트로슨은 러셀의 기술이론을, 도넬란은 러셀의 기술이론과 스트로슨의 이론을 비판한다.
이러한 두 비판은 단순히 기술이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오늘날 관점에서 볼때 맥락주의적 언어철학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일상언어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인 스트론슨은 지칭, 진리치, 진리조건은 문장 유형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특정 맥락에서 사용된 문장 개별자의 속성임을 지적함으로써 맥락주의적 언어철학과 깊이 연관된다.
2000년대부터 맥락주의는 현대 언어철학에서 다시 대두되어 “맥락주의의 주장처럼 대부분 문장들의 진리조건이 맥락의존적이라면 진리조건과 관련하여 합성성의 원리가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낳고 있다.

스트로슨의 언어철학적 구분

(1) 스트로슨은 의미와 언급/지칭/진리치를 구분한다.
; 언급/지칭/진리치는 문장 자체의 기능이나 역할이 아니라 문장이나 표현을 우리가 사용할 때 가지게 되는 기능이다. 즉 이것들은 문장의 사용과 관련된 기능으로, 의미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어떤 문장에 대해 그 문장이 그 자체로 참인지 거짓인지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문장은 특정 맥락에서 그 문장을 사용할 때만 진리치를 가진다. 반면 의미는 문장이나 표현 자체의 기능으로 볼 수 있는데, 어떤 표현에 의미를 준다는 것은 그 표현을 우리가 어떠한 식으로 사용해서 지칭하고 언급하는지에 대한 일반적 지침을 주는 것이다.
; 지시대명사 등의 지표사(indexicals)를 포함한 문장들의 경우는 스트로슨의 위와 같은 구분이 잘 성립한다. 가령 문장 ‘This is red’나 ‘You are a woman’은 특정 맥락에서 그 진리치를 물어봤을 때에만 문장의 참거짓을 따지는 것이 의미를 갖는다. 한편 그럼에도 ‘this’나 ‘you’ 또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 그러나 지표사를 포함하지 않은 많은 문장, 가령 “Kant is a philosopher”의 경우 스트로슨의 구분이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이 문장을 사용하는 맥락과 관계 없이 문장 자체가 늘 참이라는 진리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스트로슨은 문장 유형과 사용 혹은 발화된 문장 개별자를 구분한다.
; (1)의 구분에 따라 의미가 있거나 없는 것은 문장 유형이며, 참이거나 거짓인 것은 사용 혹은 발화된 문장 개별자이다.
; 그러므로 어떤 문장은 문장 유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울러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을 때 참도 거짓도 아닐 수 있다. 이는 문장 ‘The king of France is bald’가 프랑스에 왕이 있는 맥락에서는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지만, 프랑스에 왕이 없는 맥락에서 사용된다면 참도 거짓도 아니라는 우리의 직관과 잘 들어맞는다.
; 스트로슨의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어떤 문장 유형의 의미를 곧 그 문장의 진리조건으로 간주하는 진리조건 의미론은 잘못된 의미론이 된다.

(3) 스트로슨은 표현 유형과 사용 혹은 발화된 표현 개별자를 구분한다.
; 또한 (1)의 구분에 따라 의미가 있거나 없는 것은 표현 유형이며, 언급하거나 지칭할 수 있는 것은 사용 혹은 발화된 표현 개별자이다.
; 그러므로 어떤 표현은 표현 유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울러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을 때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을 수 있다.

스트로슨의 기술이론 비판
; 한정기술구 ‘the φ’를 포함한 문장 ‘the φ is G’ 형태의 문장이 있을 때, <φ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러셀의 주장처럼 이 문장 자체의 의미 중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발화될 때 그 맥락 하에서 진리치를 가지기 위해 성립해야 하는 전제(presupposition)이다.
; 가령, 한정기술구 ‘the present king of France’를 포함한 문장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bald’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 프랑스에 왕이 존재한다>라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이 전제가 성립하지 않을 경우 원래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다. 실제로 현재 프랑스는 왕정 국가가 아니므로 이 전제는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문장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bald’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전제 <현재 프랑스에 왕이 존재한다>가 문장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bald’의 의미의 일부를 이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러셀의 기술이론에 따르면 이 전제는 문장 의미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기술이론은 잘못되었다.
; 이러한 스트로슨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모든 문장이 참이거나 거짓인 것은 아니므로 배중률을 포기해야 하지만, 스트로슨의 분석은 직관적으로 조금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도넬란은 러셀과 스트로슨의 이론을 모두 비판한다.

한정기술구의 두 사용법에 대한 도넬란의 구분
; 어떤 맥락 하에서 사용된 한정기술구는 속성적 사용(attributive use)과 지칭적 사용(referential use)의 두 가지 사용법을 모두 가지고 있다.
; 속성적 사용이란 한정기술구를 사용함으로써 그 한정기술구가 서술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며, 지칭적 사용이란 한정기술구를 사용함으로써 해당 맥락에서 화자가 지칭하고자 의도한 유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 가령 사지가 절단된 채 발견된 스미스의 시체를 조사하고 있는 탐정이 ‘Smith’s murderer is insane’이라는 문장을 발화한다면 이 경우 한정기술구 ‘Smith’s murderer’는 속성적 용법으로 쓰인 것이다. 반면 스미스가 실제로는 자살을 했음에도 그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존스 씨가 법정의 피고석에서 기묘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본 기자가 ‘Smith’s murderer is insane’이라는 문장을 발화한다면 이 경우 한정기술구 ‘Smith’s murderer’는 지칭적 용법으로 쓰인 것이다.

도넬란의 러셀과 스트로슨 비판
; 러셀은 한정기술구의 지칭적 사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 스트로슨 역시 한정기술구의 지칭적 사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스트로슨의 분석에 따르면 한정기술구 ‘Smith’s murder’가 지칭적 용법으로 쓰인 두 번째 사례에서 한정기술구에 서술된 속성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정기술구를 포함한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의 직관에 따르면 기자가 발화한 한정기술구 ‘Smith’s murderer’은 분명히 존스 씨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으며, 전체 문장은 분명히 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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