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심리철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0년 2학기 서울대학교 ‘심리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수업 자료를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네이글의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 의식 문제를 심신 문제의 핵심 문제로 부활시킴
; 감각질, 질적인 특성을 ‘what it is like to be’로 표현
; 어떤 유기체가 의식 경험을 갖는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그 유기체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실(something it is like to be that organism)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때 의식 경험이란 블락이 얘기한 현상적 의식과 일치
네이글의 주장
; 환원주의/물리주의는 거짓이고, 속성이원론이 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주의, 속성이원론처럼 강하게 해석하면 안 됨)
; 여기서 환원주의는 물리적인 것/기능적인 역할로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동일론뿐 아니라 좀 더 넓게 기능주의까지 포괄하는 견해이다
; 그것보다는 조금 온건하지만 이원론을 시사하는 논증, 현상적 의식과 관련해서는 물리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을 시사하는 논증을 펴고 있다
; 일반적인 환원 모형이 의식적 경험의 경우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즉 의식적 경험을 잘 설명해주는 모델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한다
; 감각질은 어떠한 환원적 분석으로도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또한 환원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의식적 경험 또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네이글은 동일론자들이 의식적 경험과 두뇌적 특성이 어떻게 동일한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물리주의가 참인지, 환원주의가 참인지에 대한 이해 가능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왜 일반적 환원 모형이 감각질에 관해서는 들어맞지 않는가?
; 물리적인 설명, 객관적인 설명이 주어질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주관적인 현상이 하나의 관점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 경험의 질적 특성은 주관적이고 물리적 설명은 객관적이기 때문에, 물리적 설명은 주관적인 관점을 져버릴 수밖에 없다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 박쥐가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지각할 때 하는 경험, 그 경험 상태의 주관적 특성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 즉 우리는 박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 그럼에도 이때 박쥐는 주관적 의식 경험을 가진다고 충분히 가정할 수 있는 생명체이다 cf. 넙치, 말벌
; 즉 박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관한 사실이 존재한다
박쥐의 사례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인) 박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특정 “관점”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즉 경험의 주관적 특성은 특정 관점에서만 접근할 수 있다. 특정 관점에서만 경험의 주관적 특성을 알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안다, 이해한다 = 상상할 수 있다?
; 상상은 내 경험을 기본 소재로 하여 이루어지는데, 박쥐의 경험은 우리의 경험과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상상할 수 없다
; 근본적으로는 박쥐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구성된 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의 주관적 특질이 특정 관점에서만 접근 가능하다 ≠ 경험은 그 경험의 주체만 이해할 수 있다(심적 경험의 사적 특성, 일인칭적 특권처럼)
; 이때 관점은 특정 개인으로서의(경험주체로서의) 관점이 아닌 하나의 유형으로서의 관점이다 ex. 인간의 관점, 박쥐의 관점, 화성인의 관점
; 인간 종 안에서는 같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다 (by 공감적 이해, 상상적 추정)
; 그러나 우리는 박쥐나 화성인의 관점에는 접근할 수 없다, 상상에 의해 추정할 수 없다
특정 관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 될 수 있는가?
; 어떤 점에서 현상학적 사실은 완전히 객관적이다(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다)
; 특정 관점에서만 이해 가능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종 안에서는 그 경험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주관적
; 또한 얼마든지 특정 관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어 인간은 파악할 수 없는, 그럼에도 객관적인 사실이 있을 수 있다
; 반대로 박쥐나 화성인은 인간이 시각 경험을 할 때 인간의 경험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하는 그 시각 경험이 객관적 사실이 아닌가?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사실이 없다고 해야 하는가? 분명 그런 경험적 사실은 존재한다
네이글이 박쥐 논증을 통해 보이는 것은,
; 박쥐 경험의 주관적 특성에 관한 객관적 사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 경험의 주관적 특성에 접근할 수 없다
; 그런데 유기체의 물리적 작동은 가장 객관적인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다, 특정 관점과 연결된 문제가 아니다
; 이는 특정 관점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접근 가능하고 탐구 가능한 문제로, 그런 신경생리학적 사실은 인간, 박쥐, 화성인에 관계없이 다양한 각각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 한 사실은 특정한 관점으로만 접근 가능하고, 다른 사실은 관점에 관계없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다면?
=> 동일론/환원주의, 물리주의는 거짓이다 ( X )
=> 네이글은 강한 주장을 하는 대신, 우리가 가지는 일반적인 환원 모형이, 특정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으로 인해 의식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온건하게 주장한다
환원이란 무엇인가?
; 사물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 보다 정확한 관점을 획득하기 위해 객관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이때 진전은 탐구 대상에 대한 개인이나 종 고유한 관점의 의존을 줄임으로써 달성된다
; 즉 어떤 현상을 물리적 현상으로 환원하는 것은 그 현상을 특정 관점과 상관없이 설명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사물의 진정한 본성을 아는 것은 특정 관점과 관계가 없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이다
ex. 화성인 과학자는 번개에 관해 우리가 가지는 개념에 대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 개념들은 우리의 시각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번개 개념이 인간의 현상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번개 개념을 통해 지칭되는 사물의 객관적인 본성은 화성인 과학자도 이해할 수 있다. 사물 자체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반면, 경험의 주관적 특질의 경우
; 환원 과정은 객관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 본성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려주어야 하지만, 경험 경우에는 오히려 그것을 환원하는 과정이 경험의 본성으로부터 경험을 멀어지게 한다
; 경험을 환원하면 경험의 가장 본질적인 특정인 주관성(특정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사라진다
; 주관적인 관점을 버림으로써 경험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추구되는 것 같지 않다, 경험의 주관적 특질 자체가 그것의 본성이기 때문에
; 따라서 환원 모형은 의식에 있어서는 적합하지 않다(환원되지 않는다와 구분!)
물리주의자들과 동일론자들의 반박
; 어떤 관점을 통해서 접근한다는 것이 경험의 본성이라고 하는 대신, 경험을 이해하는 한 가지 개념 혹은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가?
; 물리적 속성을 경험의 본성이라고 하면 안 되나?
; 네이글은 관점은 내부 세계의 본질이며, 단지 내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정도가 아니라고 답한다
네이글의 온건한 주장
; 심신의 경우는 다른 과학적 환원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환원이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 이는 물리주의, 환원주의에 대한 도전이지만 그렇다고 물리주의와 환원주의가 거짓이라고 결론내리지는 않는다, 이 자체로 환원주의에 대한 반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다만 네이글은 환원주의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참인지, X와 Y가 어떻게 동일해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음을 지적한다
; 심신 동일론의 경우에 특정한 심적 상태가 특정한 물리적 상태와 동일하다는 명제가 어떻게 해서 참이 되는지에 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 다른 동일성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설명이 있다
; X와 Y가 같다고 했을 때, 그것들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대상을 지시하는지 알고, 대상을 지시하는 그 두 가지 경로가 어떻게 단일한 대상으로 수렴하는지를 안다. 이에 대한 개략적인 배경,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 심신의 경우에는 그러한 이론적, 개념적 배경이 없다
; 경험의 현상적 특성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잭슨의 지식 논증
; 물리주의가 거짓이고 속성이원론이 참임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증
; 네이글이 박쥐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특정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경험의 주관적 특징의 본질을 구성한다, 따라서 물리적 설명을 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물리적 설명은 주관성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과 유사
; 그러나 네이글은 물리주의 자체가 거짓이라고 단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닌 반면, 잭슨은 정확히 물리주의가 거짓임을 보이고자 한다
; 네이글과 유사하게 모종의 인식적 간극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를 보인다
흑백 방의 메리 사고실험
; 완적한 물리적 지식을 가짐으로써 세계에 대한 모든 물리적 사실을 아는 과학자 메리
; 메리는 더 이상 물리적 사실에 대해서는 배울 것이 없다
; 그러나 메리는 흑백 방을 나와 “빨간색을 본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빨강을 보는 경험의 주관적 특징을 새롭게 배우게 된다
즉,
P1. 메리는 흑백방에서 나오기 전에 모든 물리적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P2. 메리는 흑백방에서 나온 후 새로운 사실(빨간색을 보는 경험에 대한 사실, 빨간색이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C. 흑백방을 나와서 메리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비물리적 사실이 존재한다
; 물리주의는 거짓이다. 속성 이원론을 지지(비물리적 속성이 있다)
(이때 물리주의는 ‘모든 사실은 물리적 사실이다’라는 강한 의미의 주장)
비판을 살피기 위한 자세한 재구성
P1. 메리는 흑백방에서 나오기 전에 모든 물리적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P2. 따라서 물리주의가 참이라면, 메리는 방에서 나오기 전에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때 물리주의는 ‘모든 사실은 물리적 사실이다’)
P3. 메리는 방에서 나온 후 새로운 것을 배운다
P4. 메리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면,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P5. 방에서 나온 후에 메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즉 흑백방에서 메리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 from P3, P4
C. 따라서 물리주의는 거짓이다 from P2, P5
이 사고실험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좋은 반박은 아니다)
; 이런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기만 하면 된다
; 메리가 물리적 사실을 모두 알고(물리적 전지성), 색에 대해 경험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타당한 논증인가? 맞다. 전제를 받아들이면 결론이 따라나온다
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제를 살펴보자
• P1
; 가능한 전제이다.
; 또한 사고실험을 통해 결론을 보이기에 모든 물리적 지식 대신, 색깔 경험에 관련된 모든 물리적 지식을 가진다고만 가정해도 충분하다
; 또한 메리는 단순히 물리적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완전한 추론능력을 가지고 있어 물리적 사실부터 논리적으로 따라나오는 사실들까지 모두 알고 있다(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물리적 사실로부터 논리적으로 따라나온 사실이 아니다)
• P2
; 물리주의의 정의로부터 따라나온다
• P5
; P3와 P4로부터 따라나온다
핵심 전제인 P3와 P4를 살펴보자
• P3
; 흑백 방 안에서는 한번도 색깔 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이 있으므로, 방 밖에 나왔을 때 하게 되는 색깔 경험 자체는 새롭고 처음 해 보는 것이라는 것을 반대하기 어렵다
; 소수의 철학자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물리적 사실은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모든 물리적 사실을 아는 초능력자 메리를 설정했을 때는 메리가 실제 어떤 상황에 있게 될지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메리는 그 경험을 방 안에서 이미 알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P4
; 가장 중요한 반박이자 지식 논증의 가장 약한 고리(P4만 부정해도 결론 부정 가능)
; 경험 자체가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나, 그렇다고 하여 그 경험이 어떤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것인지 반문할 수 있다
P4를 보다 자세히 살피기 전에, 처치랜드의 비판을 먼저 보고 가자
; 이 논증은 물리주의가 거짓이라는 것을 보일 뿐 아니라, 속성이원론의 반대 논증도 된다(너무 강한 논증이다)
; 메리가 흑백 방에서 모든 물리적 사실을 얻을 뿐 아니라 감각질을 포함하여 속성이원론과 관련된 모든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 그랬을 때에도 여전히 메리는 방 밖으로 나왔을 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럼 속성이원론도 틀린 것이 될 것이다
잭슨의 답변
; 이 논증은 물리주의의 반론으로만 작동하지 속성이원론에 대한 반론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 흑백 방 안에서 모든 물리적 사실을 배운다는 가정에는 무리가 없지만, 속성이원론에 관한 모든 사실을 배운다는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 애초에 감각질에 대한 경험까지 포함해야 속성이원론에 관한 모든 사실을, 완벽한 지식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처치랜드의 비판이 시사하는 바는,
; 방 안에서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모든 지식”에 해당하는 것은 이론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 그리고 메리가 방에서 나와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다
; 따라서 이 논증은 물리주의가 거짓임을 보여주는 것에 제한되는 논증이 아니라, 이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논증인 것 같다
; 즉, 언어로 표현되는 이론적 지식의 한계를 포착하는 것이다
; 이는 핵심 전제 P4를 공략하는 비판들과 연결된다
P4 비판
; P4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식의 종류를 셋으로 나눈다
; 명제로 표현되는 내용을 가지는 이론적 지식(=명제적 지식 =사실적 지식) ex. “S는 p라는 것을 안다.”
; 능력으로서의 지식 ex. “나는 자전거 탈 줄 안다.”
; 대면에 의한 지식 ex. “나는 철수는 알지만, 그의 부모님은 모른다.”
; 이들은 메리가 획득한 지식을 (2)나 (3)으로 간주함으로써 지식 논증에 대응한다
; P4에서 메리가 방 밖으로 나옴으로써 어떤 사실을 새롭게 안 것은 아니다
; 이때 “사실”이란 사실적 지식을 뜻한다, 즉 메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사실적 지식이 아니다
; 메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능력으로서의 지식 혹은 대면에 의한 지식이다
; (2)와 (3)은 일상적 의미로 ‘지식’을 가리키지는 않지만(일상적 의미의 지식인 ‘명제적 지식’은 아니지만) 지식의 종류이다
; 메리가 방 안에서 배운 것은 모두 명제지이며, 방 밖에서 새롭게 얻게된 것은 명제지가 아니라 능력지 혹은 대면지이다
; 즉, 메리는 어떤 능력을 얻게 되었거나 혹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직접 대면한 것 뿐이다
; 이러한 대응에 따르면 비물리적인 사실이 존재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오지 않으므로, 물리주의를 부정할 수 없다
; 어떤 사람들은 능력지나 대면지가 아예 지식이 아니거나, 혹은 명제지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이때 물리주의자들의 대응은 실패로 돌아간다(물리주의자들의 대응이 성공하려면 능력지와 대면지가 명제적 지식과는 구별되는, 또다른 종류의 지식이어야 한다)
이때 능력지와 대면지 중 메리가 새롭게 배운 지식을 능력지라고 보는 입장이 더 대표적이다: “능력 가설”
; 메리가 방 밖에서 새롭게 배운 지식은 능력지이다
; 메리가 얻은 능력은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고, 상상하고,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빨강색을 처음 본 후에야 빨강색에 대한 경험을 기억하고, 상상하고, 다시 빨강색을 보았을 때 그것이 같은 빨강색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빨강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네이글의 박쥐 논증에 대해서도 네미로우가 능력 가설을 가지고 같은 답변을 한 적 있다
; 박쥐의 주관적인 경험에 관한 사실이 있고, 그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관점을 가진 우리 인간이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던 네이글
; 우리가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주관적인 경험에 관한 어떤 사실이 있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 우리는 이해의 대상으로 주관적 사실 같은 것을 가정하지 않고도 경험에 대한 이해의 주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능력에 의해)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메리가 방 밖에 나와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모종의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 중요한 것은 ‘능력’이 전부이고 얻게 되는 새로운 ‘지식’, ‘사실’은 없냐는 것이다
; 잭슨은 능력뿐 아니라 새로 알게 된 사실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떤 명제지인가?
; 새로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관한 사실적 지식’, 다른 사람의 경험 상태에 대한 새로운 사실
; 메리가 방 안에서 타인의 마음에 관한 회의주의적 입장을 취했다고 가정하자(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할까?)
; 방 밖에 나온 메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도 이런 조건 하에 토마토를 보면 빨강에 대한 이런 경험을 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경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 회의주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면, 회의주의가 틀렸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 왜 이 가정이 다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 메리가 고민하던 것은 “다른 사람도 이런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을까? 경험 상태를 가지고 있을까?”. 이 고민은 명제로 표현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즉 메리는 어떤 명제 p에 대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고민한다. 따라서 마지막에 메리는 어떤 명제로 표현되는 내용을 가지는 사실적 지식을 얻은 것이다
또 다른 반론: 낡은 사실, 새로운 방식 반론
; 이 반론 또한 P4를 부정하면서 메리가 새롭게 배운 것이 완전히 새로운 사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 메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방 안에서 물리적인 설명으로 이미 배웠던 동일한 그 사실이다
; 방 밖에서 동일한 사실이 다른 방식으로, 다른 관점으로, 다른 개념 하에서 접근되어서 새로운 사실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방 안에서는 물리적 개념 하에서/물리적 방식으로 접근된 사실이 방 밖에서는 현상적 개념 하에서/새로운 방식(일인칭적 접근)으로 접근된 것이다
; 따라서 이때 사실 자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 사실이 아니라, 경험을 가져야만 파악될 수 있는 일정한 개념, 즉 “현상적 개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개념에 호소)
; 개념에 호소하는 이러한 반론은 네이글에 대한 반론과 입장을 같이한다
ex. 중세 사람들은 물이 H2O인 것을 몰랐을 때에도 ‘물이 불을 끈다’는 사실은 알았다. 나중에 그들이 물이 H2O와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동일한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H2O가 불을 끈다’. 그렇다고 하여 두 사실이 다른 사실인가? 동일한 사실을 다른 개념 하에서 기술한 것이다
잭슨은 지식 논증을 통해 감각질에 관해 속성 이원론을 지지하지만, 이 비물리적 속성인 경험의 질적 특성이 인과력을 가진다고까지는 주장하지 않는다(부수현상론)
; 물리계의 인과적 폐쇄성 원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잭슨이 이런 입장을 취할 때, 논증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부수현상론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지식논증 자체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 감각질이 인과력을 갖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보자
; 그런데 메리는 방 밖으로 나와서 “빨간색이 이렇게 보이는구나”라고 말하고, 감각질에 대한 사실을 새롭게 배운다
; 이때 감각질이 어떤 인과력도 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메리는 이렇게 말하고 배울 수 있을까?
;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실(대상에 관한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실과 인식 주체 사이에 인과적 연결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숨어 있다(지식의 인과 이론)
; 이런 가정 하에서 우리가 감각질에 대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감각질이 나에게 인과적 영향력을 미쳐야만 한다 <-> 부수현상론
; 부수현상론과 감각질에 관한 지식을 새롭게 얻는다는 지식논증의 핵심 전제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
; 그러나 이는 지식 논증의 어떤 ‘전제’에 문제가 있는지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주지 않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