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 심신 동일론 반대 논증

본 [심리철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0년 2학기 서울대학교 ‘심리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수업 자료를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동일론 반대 논증

1) 신경생리학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고통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다
; 우리가 감각에 대해 기술할 때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두뇌에서 발생하는 과정이 아니다
; 어떤 사람은 고통에 대해 잘 안다. 어떤 사람은 고통에 관련된 두뇌상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고통과 두뇌상태는 다르다.
A. ‘안다’는 라이프니츠 법칙이 적용되는 종류의 속성이 아니다, 얼마든지 두 가지가 같으면서도 우리가 어떤 하나는 잘 알고 어떤 하나는 잘 모를 수 있다(후험적 동일성이기 때문에)

2) 우리가 어떤 것이 고통인 것을 알면서 그것이 C 신경섬유의 자극인 것을 모른다면, 고통에 연관된 속성과 C 신경섬유자극에 연관된 속성이 다른 것이 아닌가?
; 고통과 C 신경섬유자극이 동일하다고 할 때 이는 경험적 동일성이기 때문에, 둘이 같은 대상을 지칭하더라도 각각 독립적인 적용 기준을 가진다
; 예를 들어, ‘고통’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운 느낌이라는 질적 속성을 통해, 그 질적 속성이 기준이 되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어떤 것을 ‘고통’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 그렇다면 독립된 적용 기준을 가진다는 점에서 두 속성이 구별되어야 하지 않는가?
; 심신 동일성의 경험적인 성격이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는 현상적 속성(질적 속성)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스마트는 경험적 동일성과 독립적인 적용 기준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이 반론에 대응할 수 있을까?
; 독립적 적용 기준을 인정하면서도 현상적 속성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 화제 중립적으로 번역함으로써 반론을 피해갈 수 있다
; 심적 진술은 화제 중립적으로 번역될 수 있으므로 현상적, 질적 속성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아도 된다
; 가령, “어니스트가 그의 왼쪽엄지손가락에서 예리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바늘이 어니스트의 왼쪽 엄지손가락에 박히고 그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추켜들고 신음할 때 발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 어니스트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라고 번역 가능하다
; ‘발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심적 속성이나 물리적 속성에 대한 언급이 없는 화제 중립적 표현이다

재반론) 3인칭적으로는 이렇게 번역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인칭적으로 내가 나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합당한가? 내가 의미하는 바가 이런 것인가?

스마트의 대응 이외에 또 다른 해결책
; 위의 반론은 ‘한 가지 대상을 두 다른 개념으로 지칭한다면 각 개념에 해당하는 속성이 있어야 하며 그때 두 속성은 구분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 그러나 개념적 차원에서만 다른 개념인 것이지, 존재론적 차원에서 속성이 다르다고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존재론적 차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속성을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 한 속성(물리적인 두뇌 속성)에 대하여 ‘고통’은 현상적 개념, ‘C 신경섬유자극’은 물리적 개념인 것이다

3) 잔상은 오렌지색인 반면 두뇌 과정은 오렌지색이 아니다. 따라서 잔상은 두뇌 과정과 같지 않다.
; 이 반론은 첫번째 반론과는 다르게 라이프니츠 법칙의 올바른 적용이다, 즉 타당한 논증이다
; 두뇌 과정과 같은 것은 잔상이 아니라 ‘잔상을 갖는 경험’이다
; 내 앞에 어떤 오렌지색 대상이 있고 내가 그것을 볼때 내가 처하는 경험상태, 그 경험상태가 어떤 특정한 두뇌 상태와 같다
; 실제로 내 앞에 있는 오렌지색 대상을 보는 경험은 오렌지색의 잔상을 갖는 경험과 같은 경험이다
; 이때 오렌지색인 것은 경험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이고, 경험상태 자체는 오렌지색이 아니다
; 또한 이때 잔상을 갖는 경험만이 존재하지, 실제로 ‘잔상’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마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반론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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