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 행동주의: 행동주의 비판

본 [심리철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0년 2학기 서울대학교 ‘심리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수업 자료를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심리학적 진술에 대한 행동주의적 분석(헴펠의 분석)
• “철수는 치통을 앓는다”는 진술에 대한 분석
a. 철수는 울적거리고 어떠어떠한 종류의 몸짓을 한다
b. “뭐가 문제야?”라는 질문에 철수는 “나는 치통이 있어”라는 단어들을 발화할 것이다
c. 자세히 조사해 보면, 충치가 발견될 것이다
d. 철수의 혈압, 소화과정, 그의 반응속도 등은 어떠어떠한 변화를 보인다
e. 철수의 중추신경계에서 어떠어떠한 과정이 나타난다

행동주의자들은 이렇듯 심리적 진술이 의미의 변화 없이 물리적, 행동적 진술로 번역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번역이 정말로 “철수는 치통을 앓는다”라는 심리적 진술의 적절한 번역일까?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d, e) 우리가 ‘아프다’라고 일상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리 뇌나 신경계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번역은 고통의 일상적 의미와는 다른 것 같다

c) 실제로 충치가 없어도 치통을 앓는 환상통(phantom pain)의 사례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행동주의자들은 a(신체적 움직임)와 b(언어적 행동)를 중심으로 번역을 시도하려 한다

b) b는 언어적 행동에 의한 번역인데, 이것은 a와는 달리 순수한 물리적 행동적 번역은 아니다. 철수가 질문을 이해한다는 것, 철수가 진실을 답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즉 언어적 행동은 이해와 바람이라는 심리적 상태를 포함하므로 순수한 물리적 번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a는 순수한 물리적 번역이면서 의미를 잘 포착하는가? (이때 행동주의자들이 말하는 신체적 움직임 a는 신체 운동을 포함하는 행위나 생리적 반응이 아닌, 순수한 물리적 행위이면서도 공적으로 관찰 가능한 종류의 신체 운동이다)
a) a와 같이 분석한다면, 어떤 심적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의 물리적 번역인 행동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한다면 고통을 겪으면서도 고통을 잘 참고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 그 사람은 고통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된다. 또한 고통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 사람은 고통 상태에 있는 것이 된다.

a를 통해 분석하는 것에 문제점이 지적됨과 동시에,
b에서 제기되었던 순수한 물리적 번역의 어려움이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음이 지적된다

통증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심리적 진술 대신, 더 고차원적인 심리적 진술에 대해 생각해 보자 ex. “영희는 총을 드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는다”
; 이러한 진술은 a와 같이 전형적 행동 패턴으로 분석하기 힘들 것이다
; 이러한 진술은 기껏해야 언어적 행동으로만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 ex. “S가 p를 믿는다” = 만약 S에게 “p가 참인가”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 그러나 이에는 b에서 지적되었듯이 이해와 바람이라는 심리적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일반적인 행동과 심적 상태의 관계로 확장해 보면,
; ‘합리적 행동’을 설명하는 데에 믿음과 욕구라는 두 심적 상태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ex. 자신의 방향으로 사자가 달려온다고 믿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자를 피하는 행동을 한다.
ex. 자신의 방향으로 사자가 달려온다고 믿고,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자를 피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 이처럼 믿음이나 욕구는 어떤 적절한 욕구나 믿음과 결합되지 않는 한, 혼자서는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 따라서 행동을 통해 어떤 심적 상태(믿음/욕구)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다른 심적 상태(욕구/믿음)에 호소해야 한다
ex. 사자가 달려온다고 믿는다 = 사자가 달려올 때 살기를 원한다면 사자를 피한다
ex. 살기를 원한다 = 사자가 달려올 때 달려오는 것이 사자라고 믿는다면 사자를 피한다
; 이러한 방식의 정의는 순환성이 발생한다
; 단일한 심적 상태와 단일한 행동이 일대일 대응되지 않기 때문에(하나의 행동에는 여러 복합적인 심적 상태들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적 진술을 순수 물리적 진술로 번역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행동주의의 심각한 문제점 두 가지

  1. 어떤 심적 상태에 있으면서 아무런 행동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지만, 행동주의에 따르면 그런 사람은 심적 상태를 가지지 않는다(반직관적 결론).
  2. 심적 상태와 행동은 일대일 대응되지 않기 때문에 심적 진술에 순수한 행동적 번역을 주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행동주의자들은 a에서 지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 대신 행동 성향(성향적 속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 성향적 속성은 지금 당장 발현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그 조건 하에서 어떠어떠한 현상이 발현되는 경향성을 가지는 속성
ex. 빨강임, 딱딱함 등이 비성향적 속성이라면, 수용성임, 깨어지기 쉬움 등이 성향적 속성이다
; 심적 상태가 행동 성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ex. 고통 상태에 있다면, 어떠어떠한 조건 하에서 어떠어떠한 행동을 할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이 b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a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우리는 성대가 없는 동물의 고통 상태를 상상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한 조건 하에서 움츠리고 신음할 것이다’라는 번역에서 아무리 성향 조건을 완화시키더라도 ‘신음하다’라는 행동 패턴이 포함되는 한, 이 동물은 고통 상태를 가지지 않는다는 반직관적인 결론이 따라나온다.
; 종초월적인 고통 행동 유형은 없다, 고통을 행동에 의해 정의하려는 시도는 더욱 힘들어 보인다
; 사실 성향에 호소하는 해결책은 행동주의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 a에 대한 반론의 핵심은 “심적 상태란 행동과 구별되는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 마음 상태는 내 안에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어떤 마음 상태가 있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있다
; a에 대한 반론이 비판하는 것은 행동주의가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 마음이 단순히 물리적 행동의 일부분이라 주장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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