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 논증

본 [심리철학] 항목은 교수님께 동의를 얻고 2020년 2학기 서울대학교 ‘심리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용 흐름은 수업과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수업 자료를 최대한 풀어 쓰려 노력했다. 본 글에는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사전 문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금한다.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
; 세계는 물질적 실체(육체)와 정신적 실체(마음), 두 종류의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 마음과 육체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실체이다, 마음의 본성은 사유하는 것이고 육체의 본성은 연장을 가지고 공간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 인간은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닌 두 실체로 구성된 복합체이다, 영혼이 특정한 물리적 실체인 몸과 우연히 결합한 형태이다, 몸이 없어져도 영혼은 그 자체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비물리적 실체이다

데카르트만의 특징적인 주장: 심신상호작용론(심신 인과)
; 인간은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마음 상태를 행위로 옮길 수 있는 행위자인 동시에, 세계에 있는 대상에 영향을 받아 마음 상태가 유발되는 인식자
;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심적인 것에서 물리적인 것으로의 인과관계를 받아들여야 한다(심물 인과)
; 인식자로서의 인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것에서 심적인 것으로의 인과관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물심 인과)
; 행위자이자 인식자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설명하는 데에 심신상호작용은 상식적, 필수적 가정(심신 인과 논제)

“마음은 육체와 다르다”라는 마음에 관한 입장이 따라나오는 과정
;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찾기 위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자(방법적 회의)
; 내 신체의 존재를 포함하여 세계와 외부 대상에 관한 지식들은 의심 가능하다(악마 가설)
;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면,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cogito ergo sum)

이때 ‘나’는? 나의 본성은?
; 어떤 대상의 본성이란 그 대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 속성, 그 대상을 그 대상이게끔 하는 속성이다
; 그러한 의미에서 나의 본성은 사유하는 것이다 (thinking thing)
; 나는 사유하는 것, 즉 정신, 영혼, 지성, 마음이다

첫번째 이원론 논증: 의심가능성 논증
; 사유하는 것(마음)은 왜 육체/물질일 수 없는가?
; 나는 나의 육체의 존재는 의심할 수 있다
; 나는 마음(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 따라서 마음(나)은 내 육체와 다르다

논증의 검토
;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따라나오는가? (논증의 타당성, + 전제들의 참 = 논증의 건전성)

논증에 숨어있는 가정: 라이프니츠의 법칙(동일자의 식별불가능성)
; 동일한 두 대상은 반드시 모든 속성을 공유해야 한다
; 차별적인 속성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두 대상은 다른 대상이다
; a는 F이다. / a=b / 따라서 b는 F이다.
; a는 F이다. / b는 F가 아니다. / 따라서 a≠b.

데카르트의 논증
; 하나에 대해 의심할 수 있고, 다른 하나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다면 그 둘은 다른 것이다
; a는 F이다. / b는 F가 아니다. / 따라서 a≠b. 의 형식을 따르고 있음

라이프니츠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와 적용되지 않는 경우
P1. GD는 잘생겼다
P2. 권지용은 잘생기지 않았다
C. 따라서 GD는 권지용이 아니다
는 타당한 논증인데 비해,

P1. 나는 GD가 잘생겼다고 믿는다
P2. 나는 권지용이 잘생겼다고 믿지 않는다
C. 따라서 GD는 권지용이 아니다
는 타당한 논증이 아니다, 즉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따라나오지 않는다
; 이 논증에서 속성 F는 ‘잘생겼다고 믿는다’
; 생각, 의심, 믿음 등을 포함한 이러한 종류의 속성은 라이프니츠의 법칙에서 말한 ‘모든 속성’에 적합하지 않다
; 이러한 속성은 대상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의 심리 상태가 관여하는 속성
; 대상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개념에 의해 매개된다
; 같은 대상에 대해 다른 개념으로 매개되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속성은 두 대상이 같거나 다름을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없다

ex.
P1. 물은 H2O다.
P2. 나는 물은 시원하다고 생각한다.
C. 나는 H2O가 시원하다고 생각한다.

∴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있다’, ‘의심할 수 없다’라는 속성을 사용하였으므로 데카르트의 논증은 타당하지 않다. 라이프니츠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이다. 이 논증이 가지는 함축은 기껏해야 ‘신체’와 ‘나’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 두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두 대상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원론 논증: 상상가능성 논증
; 어떤 하나를 다른 것 없이 명석 판명하게(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둘은 다르다
; 두 개가 같은 것이라면, 하나 없이 하나를 생각할 수가 없을 것이다
; 나를 신체 없이 명석 판명하게 인식한다면 나는 신체와 다르다

상상가능성 논증
P1. 나는 나를 나의 신체 없이 명석 판명하게 이해한다
P2. 내가 명석 판명하게 인식한 것은 신에 의해 분리될 수 있다
P3. 따라서 나와 내 신체는 신에 의해 분리될 수 있다
C. 따라서 나는 내 신체와 동일하지 않다

P2
;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가정 하에 신에 호소
;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신에 대한 가정이 설득력 있지 않으니 틀린 논증이다? -> X
; 현대 철학적 관점에서도 신을 제외하고서 데카르트가 P2를 통해 포착하고자 하는 내용을 얘기할 수 있음
신의 역할) 논리적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신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논리적 가능성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 둥근 사각형 (개념적으로 동시에 참일 수 없음)
; 2+3=6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명제, 수학적 진리들은 필연적 참인 명제)
; p & -p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
; KTX보다 빨리 달리는 차
; 날아다니는 돼지
; 기술적 불가능성/물리적 불가능성과 구분 (우리 세계에서의 기술/물리법칙만 볼 필요 없음)
∴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명석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신이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상상가능성 논증의 재해석
P1; 나를 나의 신체 없이 명석판명하게 이해한다 = 내가 신체 없이 존재하는 것을 논리적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다(상상할 수 있다)
P2; 명석 판명하게 인식한 것은 신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 어떤 것을 논리적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P3; 내가 신체 없이 존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P1과 P2로부터 따라나오는 귀결)
P4; 하나 없이 다른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둘은 동일하지 않다
C. 따라서 나는 내 신체와 동일하지 않다

논증의 검토
; 이 논증은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논리적으로 따라나온다, 즉 타당한 논증이다
; 그러나 건전한 논증인가? 즉 각 전제들은 참인가?

P4 검토
; X≠Y가 (논리적으로) 가능하면, X≠Y이다
; p가 논리적으로 가능하면 p이다 > 거짓
; 이는 동일성에 적용되었을 때만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논제임 (동일자의 필연성: X와 Y가 같으면, 필연적으로 X=Y이다)

P2 검토
;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 논리적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가?
반례)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례: 물과 H2O가 다르다
; H2O가 아닌 물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화학적 구성을 가진 물?
; 둘 사이 개념적 함축 관계가 없으므로 가능 cf. 둥근 사각형
; 그러나 ‘물=H2O’는 필연적으로 참인 명제 (현대 철학자들이 받아들이는 생각)
; ‘물과 H2O가 다르다’는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한 명제 by 크립키
;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기껏해야 개념들 사이의 관계, 두 개념이 다르다는 것 정도만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개념과 ‘신체’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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