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학생자율교육프로그램 <가치탐구와 실천>의 일환으로 2019년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진행된 연구이다. 다른 연구자와 함께 두 명이서 진행하였으며, 최종발표회에서 최우수 연구로 선정되어 뿌듯한 마음으로 정리해 올린다. 🙂
전체 연구 보고서는 50페이지 분량이었으며, 연구 보고서보다는 발표 자료를 중심으로 설명을 덧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한 형식으로 기록하려 한다. 발표 제한시간은 10분이었는데, 발표에서 말한 내용을 쓰고 더보기란에 부가 설명을 넣었다. 가볍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발표 내용을 위주로 보아도 좋을 듯하고, 이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전체 연구보고서가 궁금한 사람은 더보기란까지 읽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대중의 과학이해를 통한 새로운 과학 가치의 전달과 과학문화 형성 연구’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사실 ‘과학문화 형성’은 삭제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처음 연구계획에는 과학관의 과학문화 형성 역할까지 다루려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다. 연구 제목은 수정하면 안 되는 줄 알고 하지 않았는데, 수정할 수 있다면 ‘과학관을 통한 새로운 과학 가치의 전달과 대중의 과학이해(PUS)’ 정도로 수정하고 싶다.

연구 흐름이다. 연구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이론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이론적 배경에 포함되는 분야가 꽤 많은 편이다. 실제 연구 보고서에는 각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었으나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우선 과학관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박물관과 과학센터가 있다. 과학박물관은 최초의 증기기관 같은 오브젝트를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이를 관람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관은 대부분 과학센터 형태이다. ‘왜 ~은 ~일까?’와 같은 질문이 있고, 체험 전시물이 있으며, 관련된 설명이 적혀 있는, 그런 곳이 과학센터이다. 이렇게 과학관은 과학박물관에서 시작해 과학센터로 세대를 옮겼다.
과학박물관은 ‘잘 전시된 물건에서 과학의 원리를 알 수 있다’는 19세기의 오브제 인식론의 철학적 근거에 기반하여(임소연, 홍성욱, 2005) 과학기술 오브젝트의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세대의 옮김은 1980년대에 들어 과학박물관에 제기된 비판과 관련있다. 과학박물관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과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하고, 과학논리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과학의 절대적인 권위를 유지하는 역할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과학박물관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과학의 절대적 진리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과학 이해 함양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도 퍼져나갔다.

이와 관련있는 개념이 PUS이다. PUS란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즉 ‘대중의 과학이해’를 뜻한다. 즉 대중들에게 어떤 과학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이다. 처음에는 과학은 완성된 지식이며 PUS는 이 완성된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고, 대중은 지식을 이해하는 수동적 그릇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 생각은 크게 뒤바뀐다. 과학은 완성된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관한 주장이 되었고, 지식에 관한 주장은 어떠한 맥락 안에 있기 때문에 PUS는 그 맥락 속의 과학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으며 대중은 과학과 서로 상호작용하는 주체로 부상한다.
왼쪽을 전통적 관점의 PUS, 오른쪽을 구성주의적 관점의 PUS라고 한다.
전통적 관점의 PUS는 1970년대 이후 핵발전소 건설, 핵폐기물 처리, CFC로 인한 오존층 파괴, 재조합된 DNA의 안정성 등 과학기술의 결과물이 쟁점에 놓이기 시작하며 등장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도가 떨어지자, 대중들이 과학의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이해하여 과학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따라서 대중이 과학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과학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대중에게 최대한 많은, 정확한 과학지식을 전달한다면 대중들은 과학적 소양을 가짐으로써 일상생활에 과학을 활용하고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 관점에는 과학과 대중을 별개의 존재로 간주한다는 한계가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과학기술은 확실한 지식으로 실재하는 것이고 대중은 이러한 과학지식에 대한 소양이 결핍된 무지한 존재이기에, 아무리 그 간격을 좁히려고 해도 과학과 대중 사이에는 물리적, 인식적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통적 관점에서 과학은 본질적으로 그 존재 근거를 간격에 기대면서 동시에 그 유지를 위해 간격 해소를 필요로 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김동광, 2002) 과학 대중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구성주의적 관점의 PUS 등장 배경에는 ‘전문가주의적 사고’가 있다. 전문적인 과학자집단은 일반 대중과 그들 자신을 철저히 분리했고, 이러한 전문가주의의 형성은 궁극적으로 과학자집단과 시민집단이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하며, 전문 과학기술가집단이 낳은 문제가 현대에 들어서는 더 이상 그들의 과학적 방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게 되었다.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점점 더 복잡한 이해관계를 드러내며 다양한 층위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전문 과학기술자집단은 그들의 논쟁에 있어 대중이 지니는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나아가 그 해결을 위해서는 심지어 대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PUS의 한계를 넘어 PES(Public Engagement of Science)와 PPS(Public Participation of Science)가 새로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과학관을 간 경험을 떠올리면 어떤 과학의 가치를 전달받고 왔다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과학지식의 내용을 전달받고 왔을 것이다. 즉, 아직까지도 과학관의 PUS는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것에 그친다. PUS 논의의 흐름은 변화했지만, 과학관은 그러한 변화된 흐름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연구자들이 가진 문제의식이었다.

연구자들은 지식에 관한 주장으로서의 과학, 그리고 맥락 속의 과학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과학 가치’를 상정했다. 그렇다면 연구자들의 주장은 ‘과학관은 새로운 과학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가 된다.

새로운 과학 가치는 예시를 통해 설명하였다. 크게는 과학의 사회성과 과학지식의 본성으로 나뉘는데, 외적 사회성에는 과학이 사회의 실용적 문제를 해결한다, 반대로 사회적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등이 있다. 과학의 내적 사회성이란, 쉽게 말해 과학은 결국 과학자라는 사람이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회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 연구에는 과학자의 관념이 반영되기도, 성차별적 영향이 존재하기도 한다. 다음은 과학지식의 본성이다. 과학이 관찰과 추론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실 조금은 당연한 이야기이고, 조금 더 래디컬한 예시를 보자면 과학 지식은 언젠가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된다, 혹은 과학의 관측은 관찰자가 믿고 있는 이론에 영향을 받는다 등이 있다.
원래 연구에서도 ‘새로운 과학 가치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STS(Science-Technology-Society)와 NOS(Nature of Science)로 나누어 연구했다. PHS(Philosophy and History of Science)도 처음에는 함께 연구했으나 NOS에 PHS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 제외했다. 발표에서는 학계의 복잡한 용어를 도입하는 것을 지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STS나 NOS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 연구에서는 과학관의 전시물을 분석하거나 직접 구상한 전시물의 의의를 언급할 때 STS적 관점과 NOS적 관점을 사용한다.
위의 표는 VOSTS라는, 과학교육학에서 사용하는 STS 논제에 대한 고등학생의 견해를 측정하는 평가도구에서 일부를 가져왔다. VOSTS는 STS 논제에 대한 견해를 평가하는 도구이지만, ‘과학지식의 본성’ 영역을 보면 NOS 논제 역시 충분히 다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 주제를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PUS 논의에 변화가 생겼고, 연구자들은 변화된 PUS의 흐름에 잘 들어맞는 새로운 과학 가치를 상정했다. 과학관은 이 새로운 과학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이론 연구에 이어 현대 과학관이 새로운 과학 가치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 현황을 분석했고, 나아가 새로운 과학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과학 전시를 실제로 구상해 보았다.
두 번째 슬라이드를 보면 박물관학과 과학교육학도 이론적 배경에 포함되어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론 연구를 위해 이 두 학문을 빌려왔다. 먼저 박물관학 중 과학관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여 과학관의 특성 등을 학습하였으며 과학관의 과학 가치 전달에 관한 선행연구를 살폈다. 또한 과학교육학은 과학기술학계와 과학철학계에서 진행되는 STS와 NOS(새로운 과학 가치) 자체에 관한 연구를 넘어 두 가치의 ‘전달’ 방법에 고민하기 위해 살펴보았다. 과학교육학 분야에는 과학 가치의 전달에 대한 많은 선행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두 분야에 대한 이론 연구까지 마친 후 연구자들은 과학관 답사를 통한 현황 분석을 시작하였다.

이론 연구를 마친 후 현대 과학관이 새로운 과학 가치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 과학관의 가치 전달 현황을 분석하였다.

인터뷰와 전시물 분석의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다섯 군데의 과학관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인터뷰는 생략하고, 전시물을 분석한 내용을 설명하겠다.
다섯 과학관 중 The Tech Museum은 컨택 실패로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다. 나머지 네 과학관의 경우 Exploratorium은 Jessica Parker(Director of Teaching and Learning), Tierney Sneeringer(Communications Specialist), Sewon Barrera(Digital Marketing Manager)과의, California Science Center는 Curator이자 Technology Program 부서에서 일하는 David Bibas와의, 국립중앙과학관은 전시를 총괄하는 안태범 연구관과의, 서울시립과학관은 이정모 관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연구 보고서에는 과학관별로 전시물 분석이 되어 있으나, 발표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치 전달 정도 등을 기준으로 몇 가지 전시물만을 선별하여 보여주었다.
또한 연구 보고서에는 인터뷰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별도로 서술하지 않겠다. 인터뷰에서는 기본적으로 각 과학관의 비전, 전시 주제 선정 방법, 주제를 전시물로 형상화하는 방법 등을 질문하였으며 과학관이 과학의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러한 의식 하에 시도한 전시물에는 무엇이 있는지, 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과학의 가치가 잘 전달되지 않고 있는 현실적 원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와 전시물 분석 이외에도 과학관을 직접 현장 답사하며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과학관들의 분위기를 비교할 수 있었다. Exploratorium의 경우 well-made 과학관으로 유명한데, 이곳에서는 다른 네 과학관과 달리 연인끼리 과학관에 놀러와 전시를 체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을 찾는 것을 하나의 연구 주제로 잡아 연구를 진행해 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California Science Center의 전시이다. 왼쪽은 곤충의 방어 기작을, 오른쪽은 피부의 미생물 침입 방지 기작을 설명하고 있다. 이 두 전시는 교과서에 나온 과학 지식 이상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첫눈에 보이듯 텍스트, 입체모형, 그림자료 등만을 사용해 형식적 아쉬움이 나타난다.
인터뷰에 따르면 ‘과학관의 전시물은 책을 통해 보는 것보다 더 낫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기준에 따르면 내용적, 형식적 미흡함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California Science Center의 경우 대부분의 전시물이 이와 같은 형태였는데, 시에서 운영되는 과학관이고 입장료를 전혀 받지 않아 전시물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기 어려운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 전시는 앞선 전시보다는 형식적으로 흥미롭다. 관람객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전시물에 조작을 가하고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 사이의 연관성이 떨어지고, 전달하고 있는 내용이 어려워 관람객들은 변화를 관찰하고 신기해 할 뿐 설명은 읽지 않고 넘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인터뷰를 통해 과학 전시의 형식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통념적으로 생각하기에 vr, ar, 드론, 3d 프린팅과 같은 최신 기술을 집어 넣은 전시 형식은 관람객의 흥미를 끌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을 사용한 전시 형식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전시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신기한 형식에만 빠지게 한다. 반대로 전통적인 버튼식이나 패널식 전시는 관람객의 흥미를 끌기 힘들다. 따라서 과학관에서는 이러한 두 형식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전시 형식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위 두 전시는 최신 기술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형식적 흥미로움에만 초점을 맞춰 형식과 내용 간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좋은 전시란 형식을 통해 체험을 한 후 ‘왜 이게 이렇게 되는 거지?’라는 호기심이 자연스레 생겨 설명을 읽게 되는, 그리고 설명에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 너무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포함되어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왼쪽부터 도시화의 명암, 개발도상국을 위한 간이 정수기 개발, 과학과 정치의 연관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전시들이다. 드디어 앞선 전시들과 다르게 과학지식의 내용이 아닌 과학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형식이 판넬이나 터치스크린의 텍스트 형식으로, 관람객이 내용을 일방향적으로 전달받을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두 전시이다. 왼쪽 전시는 두 사람이 짝을 지어 함께 체험하는 형태인데, 그림을 보면 female or family 칸과 male or career 칸이 있다. 카드에 적힌 job, kitchen, leader 등의 단어를 두 칸 중 하나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female이 family가 아닌 career와 연결되어 있다. 즉 female or career, 그리고 male or family 칸이 있는 것이다. 이 사람 역시 같은 단어들을 분류한다. 두 사람은 각각 분류를 마친 후에 서로의 결과를 공유하고 이야기한다. kitchen이라는 단어는 어디에 놓았는지, 놓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을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 전시는 <인공지능 인큐베이터>라는 전시이다. 전시관에 들어가면 인공지능의 목소리로 질문이 나오고, 관람객은 앞에 있는 마이크에 나름의 답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창작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걸까요?’, ‘제가 꼭 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할까요?’ 관람객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볼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위의 두 전시는 관람객이 전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사회성과 같은 과학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본 연구자들은 이 전시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시 분석 결과를 정리해 보면, 먼저 과학의 가치를 다루는 전시물은 내용을 다루는 전시물에 비해 정말 적다. 또 과학의 가치 중에서는 주로 과학의 사회성을 다루고 있고, 과학지식의 본성을 다루는 전시물은 거의 없다. 과학의 가치를 다루는 전시물은 형식적으로 아쉽거나(전시물 분석 3번째 슬라이드) 과학 지식과는 독립적으로 나타나 있다. 과학 지식과 독립적으로 나타나 있다는 말은 앞선 Exploratorium의 전시처럼 어떤 가치는 담고 있으나 과학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과학관의 전시물을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과학 가치를 전달하는 과학 전시를 직접 구상해 보았다.

구상된 전시는 세 개의 연속된 전시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주제는 과학에서의 관측이나 관측 결과의 해석이 관찰자가 의지하는 이론이나 기대 예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관측의 이론적재성 이론이다.
주제를 선정함에 있어서는 과학의 가치 중에서 과학지식의 본성은 잘 다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고려하여 과학지식의 본성 중 관측의 이론적재성을 큰 주제로 선정하였다. 또한 인터뷰에서 많은 과학관 관계자들은 과학의 사회성에 비해 과학지식의 본성은 전시로 형상화하기 더 어려운 주제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과학지식의 본성을 과학관이라는 형식에 맞추어 형상화해 보며 앞으로 이러한 주제의 전시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관측의 이론적재성 이론 자체에 관한 설명은 연구보고서에 나와 있으나, 여기서는 별도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혹시 궁금하다면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를 참고하기를 권장한다.

첫 번째 전시물을 보자. 이 역시 두 명이 짝을 지어 활동하는데, 한 명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보고 다른 한 명은 지구온난화가 낭설이라고 말하는 비디오를 본다. 그리고 둘은 빙하가 녹고 있는 사진을 보고 느끼는 위험성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후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람객들은 이 전시물을 통해 서로 다른 자료를 통해 형성된 시각을 가진 채로 같은 현상을 본다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전시물로 가면 다시 두 명은 서로 다른 방에 들어간다. 두 방은 모두 어두운데, 한 명은 풍선을 보고 다른 한 명은 농구공을 본다. 잠시 후 풍선과 농구공이 커진다.
이는 관측의 이론적재성을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심리학자 에임스의 실험을 변형한 것이다. 에임스의 실험에서는 풍선이 나오지 않고, 운동용 고무공만 나온다.

어두운 방에서 풍선과 농구공이 커지는 현상을 본 두 관측자는 물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서술하게 된다. 연구자들의 예상에 따르면 풍선을 본 관람객은 풍선이 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농구공을 본 관람객은 농구공이 커진다고 말하는 대신 농구공이 자신의 방향으로 이동해 가까이 왔다고 말한다. 이는 관측자가 풍선과 농구공에 각각 가지고 있는 기대 예상 때문이다. 즉, 관람객은 풍선은 흔히 바람을 넣고 빼 크기가 커지고 작아지는 물체이고, 농구공은 크기가 변하는 물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주 특성으로 하는 물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전시물을 통해 관람객은 관측 시 기대 예상에 따라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며 알게 된다.
풍선과 농구공을 관측하는 것은 과학에서의 관측과 거리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을 선택한 것은 국내 과학관의 특성상 관람객의 주 연령대가 초등학생인 만큼, 과학적 배경지식이 없는 관람객들에게도 형성되어 있는 풍선과 농구공에 대한 기대 예상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보다 과학적 관측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시물을 구상한다면 해당 과학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나 기대 예상을 가지고 있는 관람객만이 전시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전시관에 들어가면 태양이 동에서 서로 한 바퀴 돌아가고, 뒤이어 두 과학자의 음성이 들린다. 과학자 A는 태양중심설을, 과학자 B는 지구중심설을 말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같은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실제 과학자들의 관찰 행위에서 나타남을 익숙한 역사적 실례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과학자 A의 음성을 과학자 B의 음성보다 먼저 들려준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태양중심설의 해석을 먼저 들은 후 낯선 지구중심설의 해석을 들은 관람객들이 전시물1과 전시물2를 통해 학습했던 관찰의 본성을 떠올리며 지구중심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기존의 믿음 하에서 현상에 대한 해석을 한 것임을 이해하게끔 유도하기 위함이다.

세 전시물의 흐름을 요약하며 전시에 대한 서술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지구온난화라는 친숙한 사회적 소재를 통한 도입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접하면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그러한 서로 다른 해석이 과학의 관측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하고,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해석이 실제 과학의 관측에서 일어난 사례를 제시한다. 관람객은 이 세 전시물을 통해 ‘관찰의 본성’이라는 과학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발표에서는 체험형 전시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판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물론 판넬을 통한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추가적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직까지도 과학관은 과학의 ‘가치’를 전달하는 장소보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장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관이 과학 지식 전달의 장소를 넘어 대중 속 과학 중심지, 과학 문화의 형성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의 연구가 과학관의 모든 전시가 과학의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과학관’이란 과학지식의 내용을 전달하는 전시, 과학의 사회성/기술의 사회성을 전달하는 전시, 과학지식의 본성을 전달하는 전시가 모두 존재하는 과학관이다. 그 비율은 70%, 20%, 10%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학지식의 내용을 전달하는 전시는 이제까지 말했듯 1. 내용과 형식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체험 후에 원리가 궁금해져서 내용 설명을 읽게 되는 전시, 2. 과학지식의 소재가 실생활이나 사회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이 과학이 사회와 큰 연관성을 가짐을 생각하게 되는 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사회성을 전달하는 전시, 과학지식의 본성을 전달하는 전시는 연구자들이 구상하여 제시한 전시 이외에 더 많은 전시들이 구상되기를 바란다.
자율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 2학년 때 해 보기 힘든, 무척 값진 경험을 했다. 미국까지 가서 직접 과학관을 둘러보고 온 것도 혼자서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해 본 것도 모두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또 고등학교 2학년 때 의학 소논문을 쓴 이후 두 번째로 공동 연구를 해 보았는데(팀플 발표 정도의 수준을 제외하고), 이것으로부터 배운 것도 참 많았다. 사회과학적 방법을 베이스로 하는 공동연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참 과학‘철학’적 방법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긴 하구나 느끼기도 하고, 방대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연구 과정과 결론을 조율하는 과정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발표까지 마무리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벌써 모든 기억이 미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연구 보고서를 한창 작성하며 졸업 전까지 다시는 사서 새로운 연구를 도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아무래도 전공 과목 <자율연구> 이외에도 한 번 정도는 따로 다른 연구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