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 – (2)

다음은 <근대 과학철학> 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근대 과학철학의 큰 흐름은 <과학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나 <과학, 철학을 만나다> 등을 읽으며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 정리하지 않으려 했는데, 읽어보니 겸손히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를 느껴 기록한다.


근대 과학철학

근대과학

성공한 지식의 누적이라는 양적 기준만으로 근대과학을 평가하는 것은 근대과학의 의미를 축소, 왜곡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의미는 새로운 과학을 가능하게 한 토대인 사고방식의 새로움에 있다. … 근대과학은 자연과 진리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의 혁신을 통해 생성, 발전했다. (p. 16)

근대과학을 가능하게 한 패러다임은 기계적 자연관, 철저한 경험적 방법, 수학적 서술로 요약될 수 있다. 예시로는 케플러의 ‘자연의 수학적 구조’라는 표현이나 데카르트의 우주 등이 있다. … 자연과학이 이제 더이상 실체적 특성이나 본질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적 사실과 그것을 서술하는 ‘수학적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p.16-18)

근대 과학철학은 근대의 변화된 지적 환경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정당성을 확인하는 메타과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p. 19)

근대 과학철학

근대 과학철학에서는 귀납법과 가설적 연역법 그리고 수학적 분석 도구 등 새 과학에서 사용된 방법들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하고 정식화하는 작업이 주된 과제가 되었다. (p. 20)

갈릴레이의 과학 (p. 20-22)
1. 갈릴레이에 따르면 물리학의 과제는 실체적 원리로부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에서 관찰 가능한 관계를 서술’하는 것이다. 이 지침에 준하여 그는 ‘무엇이 물체를 낙하하게 하는가’가 아니라 ‘물체는 어떤 방식으로 낙하하는가’ 하는, 즉 낙하 현상에서 관찰 가능한 특성을 정량적으로 서술하는 을 연구목표로 정한다.
2. 정량적 서술의 단계: 자유낙하운동 현상을 반복 관찰하여 현상의 특성 가운데 핵심요소를 분석 – 등가속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 – 등가속운동의 수학적 모델을 구성(이는 이상적인 모델에 불과) – 연역된 등가속운동 공식을 자유낙하운동의 공식으로 확정(가설 설정, 실질적 현상과 비교) – 확증

갈릴레이, 케플러 등에서 확인되는 이 연구방법은 원래 분석과 종합의 방법이란 명칭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분석의 방법’은 현상을 추상화, 이상화하고 수학적 모델을 구성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종합의 방법’은 해당 모델에 일정한 초기 조건을 추가하여 이를 실질적으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로 규정하고, 이로부터 일정한 결론을 추론해 낸 뒤에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 근대의 과학철학자들은 대부분 분석과 종합의 방법을 방법론적 연구의 핵심주제로 다루었다. 방법론적 연구는 이 두 가지 방법에서 어느 부분을 중시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경험주의와 합리론이라는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베이컨, 바클리, 흄 등 경험주의자들은 이론수립과정에서 실험과 관찰, 귀납 같은 경험적 과정에 주목하고, 귀납논리의 기준을 확립하고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 주력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같은 합리론자들은 경험과학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탐구를 목표로 하여 공리적, 연역적 추론구조를 밝히는 작업에 주력했으며, 수학적 분석도구를 개발하고 정식화하는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은 자연과학을 방법론적, 존재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원리를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p. 22-23)

경험주의

베이컨은 과학적 탐구의 목적을 관찰을 통해 일반화 가능한 법칙을 발견하는 것으로 보며, 귀납을 과학의 유일한 방법으로 규정한다. 흄은 한발 더 나아가 과학에서 통용되는 인과적 설명방식의 타당성을 문제시한다. 인과율에 따른 사고가 객관적으로 타당한지를 문제시하고, 인과관계로 일반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관념연합’이라 부른다. 이들은 실체적 설명이나 원인 가설을 거부한다. (p. 24)

로크도 일단 귀납을 올바른 과학으로 본다. 그러나 감각적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에 대해서는 귀납뿐만 아니라 인과적, 가설적 사고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로크는 설명 가설을 구성하는 방법을 유추법이라 부르는데, 즉 경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현상을 경험적으로 잘 알려진 지식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방법이다. (p. 25-26)

합리주의

데카르트는 분석과 종합의 방법을 분석이란 큰 이름 아래 ‘발견의 방법’과 ‘증명의 방법’이란 이름으로 사용한다. 발견은 문제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구상하는 작업이며 증명의 방법은 가설을 입증하는 연역을 말한다. 얼핏 보기에 경험주의자들이 말하는 분석, 종합과 데카르트가 말하는 발견, 증명이 비슷해 보이나 데카르트의 것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귀결된다. 발견에서 가설이나 공리 같은 명제에 도달하는 과정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사례를 관찰하고 일반화하는 귀납이 아니라, 일정한 수의 전형적인 사례로부터 보편타당한 명제를 구성하고 이를 법칙화하는 표준사례의 일반화다. 또한 이 법칙화된 명제는 확률적 가능성이 아니라 보편타당성의 의미와 참이라는 진릿값을 가진다. 경험주의자들과 또다른 점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명제에는 경험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물리학적 명제뿐 아니라 물질과 힘에 관한 실체적 원리, 단순성, 경제성 같은 자연철학적 가정들, 더 나아가 신의 속성 같은 원리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데카르트는 과학의 존재론적 정당화를 함축한다. (p. 27-28)

라이프니츠는 방법론적 연구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자연과학에 대한 방법론이며, 다른 하나는 언어, 논리학, 대수학, 기하학 같은 기초과학의 토대를 형식적으로 체계화하는 기초과학론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방법론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분석과 종합의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인과적 설명의 논리이다. 분석과 종합의 방법에 대한 설명은 데카르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라이프니츠의 핵심은 인과적 설명의 논리에 있다. 라이프니츠 철학의 최고 원칙에 있는 두 명제를 먼저 봐 보자.

자연의 모든 사건은 그것이 발생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충족이유율).
경험과학은 형이상학에 근거해야 한다.

이 두 원칙에 따라 그는 자연탐구의 궁극적 목표를 실질적이고도 합당한 근거에 따라 사건을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경험과 수학적 방법에 의해 얻어진 지식을 실질적 원인에 근거하여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라이프니츠가 이처럼 자연 인식에서 인과적 설명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의 지식론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지식을 이성적 지식과 사실적 지식으로 나누는데, 이성적 지식은 논리학, 수학 같이 모순율과 그로부터 파생된 동일률을 근거로 하는 형식적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의 특성은 모든 사고와 존재가 반드시 만족해야 하는 보편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형식적 지식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이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적 지식은 자연이나 인간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관한 지식인데, 이는 논리적 지식과 달리 필연적이 아니며 어떤 사건이 꼭 그런 방식으로만 발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충족이유다. 충족이유는 어떤 존재가 존재해야만 하는 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만 하는 근거에 관한 명제다. 라이프니츠는 충족이유율을 경험과학의 탐구원칙으로 보며, 모든 경험과학적 지식 또는 수학적으로 서술된 자연법칙은 충족이유에 따라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족이유는 인과율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지만, 원인과 결과를 기계적으로만 연관짓는 물리적 인과율과 달리 원인 개념에 일정한 존재론적, 합목적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이것과 구분된다.

라이프니츠는 충족이유적인 설명의 원리로 다양한 개념과 원리를 제시한다. ‘자연은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경로를 선택한다’는 자연의 단순성,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자연의 경제성, ‘자연에 불연속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속성의 원리 등 물리적 사건의 진행에 관한 자연철학적 명제들이 그런 원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는 충족이유율에 따라 수학적으로 파악된 물리학적 법칙을 존재론적 원인으로 환원, 설명한다.

기초과학의 논리적 재구성 작업에서 라이프니츠의 아이디어는 논리적 환원, 엄밀성, 기호화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태를 계산 가능한 체계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는 문제가 언어든 수학이든 모든 사고는 단순한 관념들의 복합체이고 따라서 더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될 수 있으며 기호와 논리적 수단을 통해 분석, 계산될 수 있다고 보았다. (p. 27-33)

경험주의에 비해 합리주의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은 합리주의의 존재론적 원인 설명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어 주고 있어 좋았던 것 같다.

특히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인상적이었는데, 2019년 1학기에 독서학술동아리를 하며 동아리원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든 의문이 있었다. ‘왜 과학자들은 당연히 더 단순한 설명/원리를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더 좋다고 평가할까?’라는 물음이었는데, 그때부터 한번씩 떠오를 때마다 늘 생각했지만 그럴 듯한 답변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과 이에 관련된 자연의 단순성, 자연의 경제성이라는 원리를 접하게 된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과학자들의 사고에 반영되어 온 결과라는 답을 내 볼 수 있었다. 충족이유율에 대해 설명하는 라이프니츠의 저서나 논문을 읽어 보면, 또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후대에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공부해 보면 물음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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