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 – (1)

<과학철학>은 논리실증주의, 합리주의, 쿤, 파이어아벤트 등을 다루는 1부 ‘흐름’에서부터 과학의 방법, 실재론과 반실재론 등 현대 과학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다루는 2부 ‘쟁점’, 개별과학의 철학을 다루는 3부 ‘확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500페이지를 넘는 데다가 매 장에 수준 높은 지식들이 눌러 담겨 있어, 여러 장들 중 개인적으로 기록해 두고 싶은 몇 장을 장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오늘 정리하고자 하는 내용은 3부 ‘확장’ 중 ‘생물철학’ 장이다. 개별과학의 철학을 한다면 생물학의 철학을 하겠거니 생각해 온 만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첫 번째로 정리하게 되었다.


생물철학의 주요 주제들

생물철학

생물학은 세 번의 획기적 계기를 거쳐 오늘날과 같은 정상과학으로 성장해 왔다. 1856년 다윈의 진화 법칙 발견, 1865년 멘델의 유전법칙 발견, 1953년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발견이다. 1940년대 마이어와 그의 동료들은 유전학을 중심으로 생물학의 모든 성과를 다윈의 진화론과 통합하여 이른바 ‘신종합설’, ‘진화종합설’을 성립시켰다. 진화종합설에서 진화론은 특별한 지위를 지닌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모든 영역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적 우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없다면 생물학은 서로 무관하게 흩어져 있는 여러 분야들의 단순 집합에 불과해진다. 그래서 오늘날 생물학은 일반적으로 진화생물학을 의미하고, 생물철학도 진화생물학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p. 364-365)

지적설계론

지적설계론은 환원 불가적 복잡성으로 인해 진화생물학적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생화학적 시스템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에 관한 유일한 설명은 지적 설계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흑백사고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진화생물학은 성장하며 환원 불가적으로 복잡하다고 주장되었던 시스템에 관해 진화론적 설명을 차차 해 나가고 있다. (p. 367)

적응주의와 반적응주의

적응주의는 유기체가 지니는 대부분의 형질이 자연에 대한 최적의 적응결과라고 보는 순수한 다윈주의적 견해이다. 반적응주의자들은 적응주의가 생물의 진화에서 적응과 자연선택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비판한다. 적응주의와 반적응주의의 문제에서 핵심은 ‘적응과 자연선택이라는 하나의 원리가 진화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다른 원리들과 복수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물음에 확정된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다양한 보조가설을 통해 비적응적으로 보이는 사례들에도 적절한 적응주의 수정본을 제시할 수 있어서, 진정 예외적인 경우들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적응주의자들은 적응주의자들이 그렇고 그런 식의 임기응변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비판하고, 적응주의자들은 반적응주의자들이 적응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어느 한쪽의 결정적 승리를 입증할 ‘결정적 실험’은 아직 없다. (p. 368-369)

사회생물학과 유전자 결정론

사회생물학은 여러 생물종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심리적, 행동적 특성들을 진화생물학의 어휘로 재기술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프로그램이다. 이는 진화론의 확장,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관한 이해 증진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심리나 행동 수준과 유전자 수준 사이에 있는 넓은 간극 때문에 비약의 위험 또한 큰 시도다. 위험성의 대표적인 사례는 유전자결정론이다. 형질의 발현에 유전자와 환경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물음에 보편적 답을 내놓기는 힘들다. 그것은 각 형질에 상대적이다. 그런데 사회생물학은 그들이 주장하는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존재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에게 일방적 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설익고 성급하다. (p. 373-375)

최근에는 사회생물학도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 이론처럼 좀 더 유연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p. 376)

오늘날의 진화생물학

현대 진화생물학의 방법론적 흐름은 다원론이다. 새롭게 떠올라 신다윈주의적 종합의 역할을 떠맡게 된 분야가 있는데, 진화발생생물학(이보디보, Evo-Devo)이다. 이보디보는 생물체의 최종 형질을 유전자에 의한 수동적 발현의 결과가 아니라, 관련 유전자를 주어진 발생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독립적 메커니즘의 산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과정 그 자체가 형질의 발현을 주도하는 하나의 독자적 실재로 간주된다. 물론 발생과정에서 유전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p. 377)

이보디보와 함께 진화생물학을 풍성하게 해 줄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하는 발생계이론이다. 유전자보다는 발생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보디보와 같지만, 발생과정을 유전자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규정하고 또 유전자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과 다르다. (p. 377)

이보디보와 발생계이론의 전일적인(holistic) 특성은 유전자와 표현형 간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진화생물학의 영역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p. 378)

당장 세포생물학이나 유전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들께서는 결국 모두 진화적으로 설명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음에도, 진화론이 생물학의 모든 영역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적 우산 역할을 하는 것이 ‘진화종합설’이라는 어떠한 용어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진화생물학이 그 자체로 생물학에서 중요한 분과라는 것만 알았고 생물철학이 어째서 주로 진화생물학의 이야기를 다루는지는 몰랐다. 진화종합설에 대해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회생물학과는 조금 다르지만 큰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진화심리학’을 주제로 한 전공 강의를 들었었는데, 해당 강의에서는 유전자 결정론과 같은 극단적 적응주의의 주장보다는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 등 다원주의적 접근을 하는 주장을 주로 배웠다. 1학년 2학기 때 들었던 강의라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채로 들으며 ‘과학철학적 방법을 진화심리학에 적응해 분석해 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어떤 학문이든 막연히 곧바로 (일반) 과학철학과 같은 메타적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이 아니라 해당 학문의 내용과 방법론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와 환경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이 문제가 (일반) 과학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물음 역시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아직 무엇이든 배워 나가는 입장에서 먼저 해야 할 것은 기존의 흐름을 배우고, 이보디보나 발생계이론 같은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새로운 분야가 기존의 물음에 어떠한 답을 해 줄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메타적으로 분석하는 대상이 되는 학문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심지어 메타 분석의 방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정 수준으로만 구체화하는 것의 반복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분야를 공부하는 데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상 학문, 생물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과학철학의 엄밀한 방법을 익히는 것 역시 엄두가 나지 않는단 이유로 자꾸만 비교적 당장 쉬워보이는 길만을 택해 왔다. 1학년 1학기 때 들은 <과학의 철학적 이해> 수업에서 레포트를 제출했을 때, 교수님께서 ‘너무 크게 보고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더 고민해 보세요’라는 코멘트를 남겨 주셨는데 2학년 2학기가 끝난 시점의 나는 아직까지도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과학을 모르는 채로 혹은 철학을 모르는 채로 과학철학을 하고 싶지 않아 설계전공의 길을 택했으나 과학과 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에 아직까지도 겁을 먹고 있다. 물리라곤 접해본 적도 없는 내가 물리학을 처음 공부하고, 언어철학 수업을 듣기 위해 기호논리학을 공부하게 된 이번 방학이 깊이 있는 공부 쪽으로의 확실한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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